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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금수저…손가락 없지만 나누며 살아야지"

[LA중앙일보] 발행 2019/10/19 미주판 2면 기사입력 2019/10/18 21:12

[토요 스토리] 미주성시화운동본부 최문환 이사장

인정 넘쳤던 한인사회 40년
형편 나아지니 되레 싸움질
사업 물려주고 교계 헌신중
"타운에 대형 트리 세우고파"

글=장열 기자·사진=김상진 기자

글=장열 기자·사진=김상진 기자

"아마 1978년 10월이었지. 딱 이맘때야. 불혹을 넘겨 LA에 왔는데 가을만 되면 그때가 생각나. 당시 한인타운이라고 해봤자 아주 작은 마켓 몇 개, '김방앗간'도 있었고. 지금이랑 비교하면 그냥 휑했지."

최문환 이사장(86·미주성시화운동본부·사진)은 40여 년간 LA한인타운의 변모를 지켜봤다. 그만큼 한인 사회에 대한 애착이 크다.

요즘 그는 겨울을 앞두고 한인타운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대형 트리를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국성시화운동본부가 매해 전국 각지에 대형 트리를 세우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내년 성탄절에는 교계와 한인 단체가 합심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서 사람을 만나고 있어. 대형 트리를 세우면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도 몰려들 테니 한인타운이 밝아지지 않겠어. 그래야 주변 한인 상권도 좀 생기가 돌지."

그는 열 손가락이 없다. 조심스레 사연을 물었는데 의외로 덤덤하게 과거를 들려줬다.

"난 원래 '금수저'로 태어났어. 아버지가 서울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분이야. 호강하면서 자랐지.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업 수완도 좋았어. 대학생 때 형광등 사업을 시작한 뒤 봉제 공장, 인쇄 공장까지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지. 손가락은 인쇄 공장에서 닷새 밤을 새우면서 일하다가 너무 피곤했는지 넘어졌는데 재단기에 그만. 아마 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계속 교만하게 살았을 거야. (웃음)"

사고는 탄탄대로만 걷던 그를 멈추게 했다. 제동이 걸리자 일단 인생에서 쉼표를 찍어야 했다. 당시 동생이 LA에 터를 잡고 있던 터라 머리를 식히겠다고 미국으로 들어온 게 바로 40년 전 가을이다.

그는 1년 정도 쉬다가 다시 달렸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식품을 들여와 팔아보기도 했지만 낯선 미국 땅에서 사업은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잡은 아이템이 '인쇄'였다. 젊은 시절 아픔이 배어있는 직종이지만 상처가 기독교 신앙을 통해 점점 아물어가던 때였다.

인쇄 공장(에이스 커머셜) 사업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손에 쥐이는 게 많아질수록 나누며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는 한인사회가 '정'이 있었어. 교회들도 지금처럼 시끄럽지 않고 좋았지. 다들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고. 그 대가는 지금 다 누리고 있다고 봐. 그런데 요즘 한인 단체나 교회를 보면 분쟁도 많고. 가만히 보니 '돈'이 생기니까 잡음이 생기는 거야.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최 이사장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했다. 인쇄 공장은 막내 아들이 대신 운영 중이지만 비즈니스의 흐름만 봐도 모든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음을 체감한다.

"인쇄업도 예전 같지 않아. 우리는 이미 5년 전에 주 아이템을 포장지로 바꿨어. 앞으로 한인 사회나 교계도 많이 어려워질 텐데, 1세들이 다 죽고 나면 누가 한인 사회를 지키겠어. 내가 증손자까지 있는데 아이들도 다 영어 쓰고 며느리까지 다른 나라 사람이거든. 점점 모국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니까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면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고민해 봐야 해. 이제는 다들 그만 싸우고. (웃음)"

그는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는 시점에 서있다. 한창 인생을 달리는 이민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성실'이라는게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면서, 허황된 꿈꾸지 말고 충실히, 겸손하게 사는 게 가장 잘 되는 길이야."

LA의 가을 바람은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분다.

☞최문환 이사장은

1933년생.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미주성시화운동본부를 통해 교계에 헌신중이다. 그동안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월드미션대학교, 한인동포재단, 거리선교회, 남가주장로협의회 등 여러 단체에서 요직을 맡아왔다. 그는 "인생에서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건 엄청난 축복"이라고 했다. 가장 존경하는 종교인은 "나성영락교회 담임을 역임한 박희민 목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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