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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받은 강성범, 방송 접은 김영희···정치풍자 '씁쓸한 실종'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0/19 19:04





정치 풍자 코미디 ‘여의도 텔레토비’의 일부 화면. [사진 tvN 캡처]





“‘육성사이다’는 당분간 긴 휴식에 들어가려 합니다.”

개그우먼 김영희씨가 16일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이다. ‘육성사이다’는 김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김씨는 14일 다른 출연진들과 ‘금수저’를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다가 “지금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조국 딸 느낌 나요. 박탈감 느껴요”라고 말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경솔했다”는 비난 댓글이 이어졌고 김씨는 “정치에 대한 무지함에서 어떤 의도 없이 가볍게 생각했다. 앞으로 더 신중하게 녹음하겠다”고 사과했지만, 비난 여론이 계속되자 결국 방송 중단을 결정했다.





강성범씨(왼쪽)과 김영희씨





12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호집회에 참석했던 개그맨 강성범씨는 촛불문화제 무대에 올랐다. 강씨는 “처음에는 조국이 아니면 안 되느냐라는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국이 아니면 안 되게 됐다”면서 “조국 일가가 저렇게 저잣거리에 내걸리는 걸 보고도 ‘검찰개혁 하겠소’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겠나. 반대로 검찰이 수긍하는 사람들이 법무부 장관이 됐을 때 검찰개혁을 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여 박수를 받았다. ‘개념 개그맨’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KBS의 간판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얻은 두 희극인의 명암이 조국 사태에서 이처럼 엇갈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작가는 “사회적 이슈를 풍자 소재로 삼은 개그우먼은 방송을 접어야 하고, 해당 이슈에 대해 확실하게 한쪽 편을 든 개그맨은 칭찬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파네스 [중앙포토]





학자들은 코미디언(Comedian)의 기원을 대개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서 찾는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약 40편의 희극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당대 정치나 사회 현실을 풍자해 인기를 끌었다. ‘연회의 사람들’ ‘아카르나이의 사람들’에서는 아테네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였던 클레온이 풍자의 대상이 됐다. 철학자로 이름을 남긴 아테네의 명사 소크라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를 궤변론자로 묘사하며 조롱했다. 즉 코미디는 권력이나 유명 인사에 대한 풍자와 해학에서 시작된 셈이다.

강력한 신분 질서와 종교 의례가 지켜졌던 중세 유럽에서도 어릿광대들은 예외적 존재였다. 이들은 왕이나 귀족 혹은 사제들의 위선과 허영을 비틀고 조롱하는 것이 허용됐다. 조선 시대 마당놀이도 마찬가지였다. 양반들의 ‘내로남불’을 꼬집는 작품을 내놓으며 민간에서 환영받았다.




마당놀이 '애랑전'의 한 장면 [중앙포토]





한국에서 코미디에 정치·사회 풍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노태우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권위적인 ‘5공 시대’에 대한 청산 분위기가 무르익고,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등 이른바 3김이 정치무대 중심에 서면서 정치 풍자 코미디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런 배경 아래 고(故) 김형곤씨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같은 풍자극이 나오는가 하면 최병서씨처럼 유명 정치인의 성대모사가 인기를 끌었다.




고 김형곤씨의 생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회고하는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중앙포토]








1988년 MBC '가요 초대석' 중 정치 사회를 풍자하는 '분장실 뉴스'코너를 담당했던 최병서 [중앙포토]





2000년대 들어선 KBS ‘개그콘서트’에서 최효종·황현희씨 등이 정치나 사회 소재를 풍자하는 여러 가지 코너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발주자였던 케이블TV 방송사 tvn의 ‘SNL 코리아’는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선보였는데 18대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이정희 등을 풍자해 이슈몰이를 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같은 정치 풍자 코미디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상파 3사 중 MBC와 SBS가 잇달아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코미디가 설 자리도 좁아졌지만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개그콘서트’나 tvn의 ‘코미디빅리그’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정치나 사회를 풍자해 인기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 사라졌다.




개그맨 황현희씨가 진행한 KBS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방송가에서는 이같은 분위기가 “박근혜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능 PD는 “박근혜정부 때 CJ가 된서리를 맞았는데 그 배경이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희화화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말이 파다하게 돌았다”며 “‘여의도 텔레토비’가 폐지되면서부터는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는 건 금기시 됐고, 계획안을 올려도 위에서 통과시켜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의도 텔레토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 이후 무대에서 사라졌다.




최순실씨를 풍자한 KBS '개그콘서트'. 이 방송은 최씨에 대한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2016년 11월6일 방송됐다.





정치적 분위기가 과도하게 양극화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한 방송작가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권위주의 정부라고 불렸지만 양 김씨(김영삼ㆍ김대중)를 비판해도 대체로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해도 풍자의 소재가 됐다”며 “하지만 요즘은 특정 정치인을 풍자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조금만 들어가도 해당 지지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나 댓글이 빗발쳐서 엄두를 낼 수가 없다”고 전했다. “속된 말로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분위기’”라면서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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