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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전 총리 별세…'격동의 80년대' 외교·안보史 큰 획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9/10/21 10:20

정통외교관…5공 한미관계 정상화·日경협 주도…반기문 발탁도 전두환 '후계자'로 거론도…'러브콜' 뿌리치고 퇴장

정통외교관…5공 한미관계 정상화·日경협 주도…반기문 발탁도

전두환 '후계자'로 거론도…'러브콜' 뿌리치고 퇴장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21일 별세한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제5공화국 국정의 최전선에서 섰던 인물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고인은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끈 신군부의 부름으로 발탁돼 외무장관(1980∼1982), 국가안전기획부장(1982∼1985), 국무총리(1985∼1987)를 역임했다.

신군부 멤버도 아니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정권 내내 중용되며 대한민국 외교·안보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고 한때 유력 대권 후보로도 거론됐다.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 첫 외무장관에 오른 고인은 정통성 시비에 휩싸인 신군부 정권과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의 관계 정상화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석방됐다.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최대 규모의 양국 경협협정을 추진했고, 1983년 40억 달러의 경협자금 협상을 타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발탁한 것도 그의 혜안이었다.

고인은 1973년대 초대 주인도대사로 부임하며 반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갔고 1985년 총리 취임 때는 미국 연수 중이던 그를 초고속 승진 시켜 총리실 의전비서관에 임명했다.

고인은 2011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데리고 일했는데 참 부지런하고 요령 있게 일을 잘했다"며 "우수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 10명만 있으면 나라가 잘된다"고 반 전 총장을 평가했다. 반 전 총장 역시 고인을 평생 '멘토'로 삼았다.



고인이 2대 안기부장에 취임한 이듬해인 1983년에는 아웅산 테러가 터졌다.

고인은 2000년 내놓은 '노신영 회고록'에서 당시 미국 측이 순방기의 항로 우회를 권해 비행이 1시간 30분이 더 걸려 아웅산 묘소 참배가 하루 순연되면서 테러 피해가 그나마 줄었다는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과 첫 공식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 중국 여객기 불시착 사건, 사할린 상공에서 발생한 소련기에 의한 대한항공기 격추사건도 고인이 수습을 주도했다.

고인은 18대 국무총리에 오르면서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이른바 '노-노 체제'를 이루는 등 5공 정권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다.

그러나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공직을 떠났고 이후 "다시는 국민 세금을 안 받는다"며 정치 입문의 손길을 거듭 뿌리쳤다.

그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복지·장학사업에 몰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당시 직접 자택에 전화를 걸어 재단을 맡아달라고 수차례 설득했다고 한다.

1930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세 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고구마 장사를 하며 고학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대학교 3학년 때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입대를 해서도 공부에 전념해 1953년 고시 행정과 3부(외교)에 합격했다.

1955년 외무부에 입부한 고인은 178㎝의 큰 키와 남다른 업무능력·추진력으로 '불도저 컴퓨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항상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출근해 공무원 사회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함경도 함흥 출신인 서울대 법학과 동기생인 부인 김정숙 여사와 1954년 결혼해 3남 2녀를 뒀다. 부인과 장미 90여종을 키웠으나 2009년 사별한 뒤에는 이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banghd@yna.co.kr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방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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