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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여행지에서 남편 실종사건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9/10/23  0면 기사입력 2019/10/22 14:51

올 가을 내가 체험한 일은 나에게 깨우침을 줬다. 만사에 티격태격 부딪히며 사는 남편과 새로운 관계가 성립된 사건은 참으로 우연히 일어났다. 남서부 유럽에 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성지를 두루 돌고 바르셀로나에서 보낼 적이었다. 긴 여행에서 피곤했지만 그날도 남편과 아침을 먹은 후 호텔을 나섰다. 며칠 관광을 다니며 익숙해진 바르셀로나다. 고딕 지역에 있는 스페인 사람들의 자랑인 피카소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본 후에 가까이에 있던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까지 먹었다.

우리는 구 시가지의 중심가인 카탈루나 광장으로 가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겁도 없던 많은 비둘기들과 여유를 즐기다 람블라 거리로 들어섰다. 그 길은 카탈루나 광장에서 15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동상이 있는 해변가로 근 1마일 죽 이어진다. 도로 양쪽으로 차가 다니지만 중앙에 보행자들을 위한 넓은 가로수길이 있어 느긋하게 아름다운 도시의 환경을 즐길 수 있다. 인구 1.6백만의 도시에 작년에 2천만의 관광객들이 찾았듯이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메웠다.

람블라 거리의 한 공연장에서 집시들의 열정적인 플라밍고춤에 매료당하고 나와서 본 가로수길의 환상적인 야경이 좋아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번 찾은 길이다. 많은 식당들과 가게가 있고 특히 온통 먹거리 천국인 보케리아 시장도 있어서 남편은 람블라 거리를 무척 좋아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다민족 관광객들을 구경하는데 순간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로 복잡한 거리에 어지러웠다.

가슴이 섬뜩했다. 여권과 돈을 내가 가지고 있고 우리는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문자로 미국의 가족들과 소식을 주고 받으니 전화기에 트래블 패스(TravelPass)를 연결하지 않았다. 평소에 스마트폰에 중독된 남편이라 여행할 적에는 세상을 보자는 내 고집 탓이었다. 평소 거리에 있는 식당마다 입구에 내붙인 메뉴판을 보는 것이 남편의 버릇이라 특히 식당들을 주의해서 봤다. 남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뛰어다니며 그를 찾던 동안 내 머리 속에는 온갖 불안이 꿈틀거렸다.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나이든 남편이 나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치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됐다.

한 30분 진땀을 흘리며 남편을 찾는데 전날 들렀던 성당이 떠올랐다. 람블라 거리에 표나지 않게 자리잡은 작은 성당의 성전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동상이 생각났다. 그 성당에 가서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지런히 성당을 향해 뛰어갔더니 성당 입구에 남편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도 나를 잃고 혼자서 헤매면서 겁을 먹은 눈치였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우리를 만나도록 인도해 주셔서 무조건 감사기도 드렸다. 원인은 식당의 메뉴판이 아니라 도자기 인형 야드로 가게였다. 예전에 야드로를 수집했던 남편은 지나다 보이는 야드로 가게에 끌려서 들어갔다가 인파로 복잡한 거리에서 나를 잃었다.

만약에 미국에서 여행중에 남편을 잃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터인데 해외에서 특히 영어권이 아닌 나라여서 더욱 불안했었다. 그때부터 남편의 주머니에 호텔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어줬다. 아무튼 내가 주선하던 여행일정에 버릇처럼 불평하던 남편이 변했다. 실종사건 이후에는 어딜 가든지 불평없이 내 곁을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의 고도인 톨레도나 수도 마드리드에서 관광 다닐 적에도 남편은 옆길로 나서지않고 내 곁에 꽉 붙어 다녔다. 특히 마드리드의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나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 명화를 볼 적에도 나의 존재가 가까이 있음을 확인하고 다음 방으로 옮겨 다녔다. 나도 남편과 관심이 조금 달라서 시간을 갖고 자세히 보고 싶은 작품은 오디오 설명을 들으면서 남편의 뒤를 따랐다. 평소 우리가 미술관에 들리면 몇 시간 후에 어디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제각기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헤어졌던 버릇이 바뀌었다.

성급한 토끼같은 내 버릇을 못 고치는데 어떻게 거북이같이 느린 남편의 버릇을 고칠수 있나. 서로의 다름에 적응하며 살다가 이렇게 실종사건을 겪고 나서야 새삼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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