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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박사의 '몸&맘'] 성희롱이 남긴 후유증

황세희 박사
황세희 박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3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10/22 17:52

우리들은 그녀를 '순이' 로 불렀다. 순박한 미소와 착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당시 순수함을 상징하는 순이는 '국민 여동생'의 대명사였다. 순이가 남을 유혹하거나 해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행여 누군가가 그녀를 울린다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내 친구 순이도 그랬다.

그런데 바로 그녀가 난생 처음 분노심에 치를 떤 적이 있었다. 바로 '우 조교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이 경험한 성추행 사건을 고백하면서다. 우 조교 사건은 그녀를 성희롱한 지도교수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사건인데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신 교수의 성희롱 책임을 인정했다.

그날 순이가 내게 들려준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지도교수는 순이에게 저녁을 사줬고, 순이는 고맙게 먹었다. 하지만 식사 후 교수는 마수로 돌변해 그녀를 성추행하려 했던 것이다. 극심한 공포감 속에서도, 순이는 기지를 발휘해 "일단 이곳을 나가자"는 제안을 했고, 교수는 기꺼이 응했다고 한다. 그가 식사비를 계산하는 동안, 순이는 달려나가 간신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순이는 수치심에 몸을 떨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알 수 없었단다. 물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기에 그 일은 6년간 가슴에 묻어야 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남아 그날 이후 순이는 남자를 보면 괜히 위축됐고 편치가 않았다고 털어놨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을 강제하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예일대 의대 폰타나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에 참전한 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려 치료를 받은 327명의 여군을 조사했다. 결과는 전쟁터에서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는 공포보다 남자 군인에게서 성추행(강간 및 강간에 준하는 행위가 43%, 나머지는 신체적 접촉, 심한 음담패설 등 포함)을 받았던 충격으로 입원한 여군이 4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은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 후 악몽, 대인기피, 공포심, 불안 등으로 정상생활이 힘들어지는 정신과 질환인데 짧게는 6~12개월, 길면 수년간 고통을 겪는다.

피해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당신에게 추행당할 만한 문제는 없나' 등 주변의 편견이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직장 상사와 직원, 교수와 학생처럼 상하관계일 땐 후유증이 심각하다. 피해자가 심한 배신감, 환멸, 무력감 등을 느끼면서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은 성추행에 대한 충동과 욕망(id)이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걸로 본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강한 제제, 불이익 등 현실적 압박을 받으면 대부분 현실을 인식하는 '자아(ego)'가 발동해 이를 억제한다. 즉 성추행 피해를 줄이려면 '확고한' 사회적 제재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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