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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노병들 '평화 메달' 받다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3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19/10/22 19:30

샌후안캐피스트라노서
총영사관, 16명에 수여
10대에 입대…90대 눈앞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베레모를 가슴에 얹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모두 1930년대생이다.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베레모를 가슴에 얹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모두 1930년대생이다.

노병은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 21일 오후 7시, 인구 3만5000명의 소도시 샌후안카피스트라노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평화의 사도 메달' 전수식이 처음 열렸다. 한국전 참전용사 16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한국 정부를 대신해 LA총영사관 황인상 부총영사가 노병들의 목에 태극 문양이 박힌 메달을 걸어줬다.

이날은 이 지역을 관할하는 미 재향군인회 721 지회 정기 모임이 있던 날이다. LA총영사관은 올해 초, 이 지역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 및 선정 과정을 거쳐 16명(1명 사망)의 용사에게 메달을 전달했다.

행사가 열린 커뮤니티 강당엔 검은 베레모를 쓴 백발의 노장들과 그 가족 등 100여 명이 찾아왔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모두 16개였지만 직접 받은 용사는 9명이었다. 6명은 질병 등의 이유로 가족이 대신 받았다. 1명에겐 우편으로 전달됐다. 아흔을 내다보는 노병들은 박수와 찬사 속에 주위의 부축을 받거나 보행기, 지팡이에 의지해 메달을 받았다.

18세 때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하트 팁턴은 전쟁 당시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17세에서 18세로 넘어가자마자 입대했다. 당시 18세가 되면 군에 들어갈 수 있었거든. 난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친구랑 결혼해서 직업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샌디에이고에서 훈련을 받은 뒤 포항 인근 도시에서 주둔했다고 말했다. "포항 근처에서 근무했다. 발음이 평양과 비슷해 포항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우리를 인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일어서기도 힘든 노병 폴 베네수엘라는 육군 소속으로 1951년부터 2년간 서울 등지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제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에 대한 기억? 끔찍했지. 38선을 경계로 중국군과 북한군이 내려오는데, 난 소총을 들고 맞서 싸웠다. 탱크 포격도 무서웠다." 그는 이어 "이제 난 뉴스도 보기 힘든 나이야. 다만 전쟁은 안 돼, 더는 안 돼"라고 말했다.

메달 전수식은 절도 있게 진행됐다. 노병들은 아들뻘인 재향군인회 대표를 '커맨더'라 부르며 거수경례를 했다.

돈 소비에 721 지회 커맨더는 10년 전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도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끼여 애국자들의 희생정신조차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통해 인내와 지혜, 극기를 배울 수 있었다."

재향군인회 721 지회는 이 지역 한국전 참전용사 수를 정확히 알 순 없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전,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100명 정도이며 현재 약 40명이 살아있다고 설명했다.

노병은 사라지고 있다. 바라보지 않으면 잊혀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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