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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쿠르드족 사태의 교훈

터키·이라크·시리아 등에 걸쳐 자리 잡은 자그로스 산맥과 타우루스 산맥 동쪽 지역은 전통적으로 쿠르디스탄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쿠르디스탄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쿠르드족은 약 40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간 공동체이다. 쿠르드는 현존하는 종족 중에서 근대 국가를 만들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큰 집단이다.

지난 9일부터 시작한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으로 30만 명의 피난민과 6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외 언론은 지난 수년간 국제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쿠르드족 거주 지역 내 군사 거점 건설과 쿠르드 민병대의 협조가 절실했던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IS 잔류 세력이 군사적으로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미국은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고, 일종의 미군의 보호 아래 있던 쿠르드가 터키의 타겟이 된 것이다.

쿠르드족 사태와 관련해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의 이기적인 처사를 비난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구 위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모두가 잠재적으로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최우선 정책 기조로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 자국 군인의 신변을 보호하고, 국제 테러리즘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영예를 누리며, 석유 자원의 글로벌 공급망 장악 등과 같은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그동안 미국은 세계 경찰로서 국제 안보와 국제 평화를 위해 일종의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외교정책 하나하나가 어떤 손실과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상대적으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둘째, 2017년 한반도를 감도는 불안과 안보 위기를 뒤로하고 2018년 이후 북·미간 전격적인 협상 국면이 전개되었다. 중동과 동북아의 안보 지형과 지역 질서는 천양지차다. 하지만 미국의 이해관계가 급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전략무기를 한껏 자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로켓맨'이라고 으름장을 놓던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에서 북한에는 장밋빛 미래가 있다고 강조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동일인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 정치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미국의 국가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서로 다른 미국 대통령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미 동맹은 북한이라는 위협 요인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억지하는 목적을 핵심 근거로 삼고 있다. 현재의 동맹을 최초로 맺었던 1953년 10월과 비교해서 지금의 한·미 관계는 상전벽해 수준의 변화를 경험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굳건한 동맹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국제 질서에서 상황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쿠르드족은 공식적인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쿠르드와 공식적인 동맹 관계를 약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IS를 상대로 한 대테러 작전 시기만을 놓고 본다면 미국과 쿠르드는 일종의 의사(疑似) 동맹 관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의 정세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미국과 쿠르드의 협력은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사상누각이었을 수 있다.

한·미 동맹과 비교하기에는 비약과 무리가 심하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이익에 우선하는 어떤 국제적 약속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일방만이 이익을 취하는 동맹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이익의 고갈을 확인한 미국이 쿠르드를 떠나듯이, 미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지속해서 자신의 이익을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호혜적인 동맹 관계의 논리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끊임없는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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