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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취임] 40년만에 이룬 '마틴 루터 킹의 꿈'

미국 사회의 편견에 도전했던 흑인 인사들은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 정점을 찍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68세의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선언했던 지난 1963년 워싱턴 집회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남부의 유색인들은 투표 등록을 하려다가 얻어맞고 감옥에 갇히고 살해당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서 킹 목사의 연설을 들었던 셜리 프랭클린 애틀랜타 시장도 "오바마의 당선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꿈이 실현된 결과"라며 "이는 50년전 시작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프랭클린은 흑인 여성 최초로 애틀랜타 시장에 선출됐다.

킹 목사와 함께 '남부크리스천리더십컨퍼런스'를 설립했던 조지프 로어리는 "문 밖에 나가서 `영광 할렐루야'라고 소리치자 사방에서 화답했다"며 "흑인들이 미시시피와 앨라배마에서 유권자 등록을 시도하다가 폭행당한 지 40년만에 흑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킹 목사의 여동생인 81세의 크리스틴 킹 패리스는 "동생이 살아있다면 오늘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다.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962년 흑인 최초로 미시시피대학에 입학했던 제임스 메레디스는 오바마가 그가 지난 1966년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는 집회에 참가해 구타당하면서까지 갈구했던 모든 기회의 성취를 대변한다고 전했다.

75세의 메레디스는 "당시는 전쟁이었다"며 "이제 백인 주류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오바마시대의 개막은 서구 기독교 문명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흑인운동 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는 "언제가 될 지 몰랐지만 이런 순간이 꼭 올 거라고 믿었다"며 이번 선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여성과 소수인종이 '변화' 주도…흑인 유권자 95% 오바마 선택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는 여성층과 첫투표층 등 젊은 유권자, 흑인·히스패닉·아시안계 등 소수인종, 경제적 고충을 겪고 있는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인종별로는 흑인 유권자 가운데 95%가 오바마를 4%가 매케인을 지지했다. 흑인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13%에 달한다. 또 유권자의 9%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는 67%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전체 유권자의 2%인 아시안계는 62%가 오바마 지지성향을 나타냈다.

우선 성별로 보면, 오바마는 전체 유권자의 53%를 차지하는 여성층에서 56%를 얻어, 43%를 얻은 매케인을 압도했다. 남성은 오바마가 49%, 매케인은 48%였다.
특히 연령별로 골 깊은 세대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18-29세의 젊은층 유권자들의 오바마 지지는 66%로, 매케인의 32%와 더블 스코어 이상의 차를 보였다.

30-44세에서는 오바마대 매케인이 52%대 46%였고, 45-59세 유권자층에서는 두 후보 모두 49%를 얻어 동률을 보였으며, 60세 이상에서는 매케인이 51%로, 47%를 얻은 오바마를 앞섰다.

전체 유권자의 74%를 차지하는 백인은 55%가 매케인을, 43%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백인 유권자의 비중은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등 소수 인종의 증가로 인해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비중을 보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 흑인역사-노예제에서 백악관 입성까지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함에 따라 노예의 신분으로 처음 미 대륙에 발을 들였던 흑인의 곡절많았던 역사에 ‘영광의 순간’이 추가됐다.

다음은 미국 흑인사의 주요 사건들이다.

▲ 1619년 = 최초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 20명이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당도했다. 이후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예제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1776년 = 세금 문제로 영국과 갈등을 빚던 미국은 결국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노예제에 대해서는 어떤 논쟁도 없었으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역시 노예를 부렸다.
▲ 1787년 = 미국 헌법은 의회가 1808년까지 노예매매를 금지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 1793년 = 목화씨를 빼내는 기계인 ‘조면기’가 발명돼 노예 노동력에 대한 남부의 수요가 증가했다. 한편 북부에서는 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도주노예법이 강제 집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 19세기 초 =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노예제 및 노예매매를 점진적으로 금지했다.
▲ 1808년 = 노예의 수입이 금지됐다.
▲ 1831년 = 냇 터너가 버지니아주에서 노예 반란을 주도했다.
▲ 1861∼65년 = 노예제가 일반화된 남부 주들이 동맹을 결성해 이에 반대하는 북부를 상대로 남북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1865년 = 미국은 수정헌법 제13조를 근거로 노예제를 공식 폐지했으며 링컨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비밀리에 폭력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KK)을 결성했다.
▲ 1868년 =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수정헌법 제14조가 공표됐다.
▲ 1870년 = 흑인 남성들이 투표권을 얻었고 조셉 레이니와 히람 레블스가 각각 미국 최초의 흑인 하원 및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 1896년 = 미국 대법원은 “서로 다른 인종은 동등하지만 분리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남부에 확산된 인종 분리주의를 정당화했다. 이 판결은 공공시설에서 흑백분리를 의무화하는 ‘짐 크로’(Jim Crow) 법의 단초를 제공했다.
▲ 1909년 =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설립됐다.
▲ 1941∼45년 =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백인들과 분리 배치됐다.
▲ 1947년 = 재키 로빈슨이 흑인 야구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 1949년 =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의 대통령령에 따라 전투 부대내 흑백분리가 공식 폐지됐다.
▲ 1954년 = 미 대법원은 학교내 흑백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 1955년 = 미 앨라배마주의 흑인인권운동가인 로사 파크스가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대규모 흑인운동이 전개됐으며 이 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이 흑인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 1957년 = 미 의회는 모든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공민권법(Civil Rights Act)을 통과시켰으나 상당수 남부 주들은 이 법안을 지키지 않았다.
▲ 1960년 = 수정 공민권법에 따라 다른 사람의 투표 및 투표 등록을 방해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됐다.
▲ 1961년 = 흑인들은 학생과 자원봉사자 등을 주축으로 버스를 타고 흑백통합 정책에 맹렬히 반발하는 남부 지역을 여행하는 ‘프리덤 라이더스’(Freedom riders) 운동을 전개했다.
▲ 1962년 = 제임스 메레디스가 흑인 학생 최초로 미시시피대학에 입학했다.
▲ 1963년 = 마틴 루터 킹은 흑인운동의 정점에서 워싱턴 DC에 운집한 20만명의 군중을 앞에 두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내 어린 자녀 4명이 언젠가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 꿈”이라고 연설했다.
▲ 1964년 = 린드 존슨 전 대통령이 공민권법에 서명했고 마틴 루터 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1965년 = 흑인운동 지도자인 말콤 X가 살해됐다.
▲ 1966년 = 캘리포니아의 급진적인 흑인 운동가들이 ‘블랙팬더당’을 결성했다.
▲ 1967년 = 서굿 마셜이 흑인 최초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 1968년 = 마틴 루터 킹이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한 뒤 미 전역에 걸쳐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 1984, 1988년 = 흑인운동 지도자인 제시 잭슨이 2차례에 걸쳐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민주당 경선에 도전했다.
▲ 1989년 = 버지니아주는 더글러스 와일더를 미국 최초의 흑인 주지사로 선출했다. 또 콜린 파월이 흑인 최초로 미 전투군의 수장으로 임명됐으며 이후 2001년 최초의 국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 1992년 =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일어나 최소 59명이 사망했다.
▲ 1995년 = 흑인 이슬람단체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NOI)의 주도 아래 흑인 약 80만명이 워싱턴에서 행진을 벌였다.
▲ 2005년 = 콘돌리자 라이스가 흑인 여성 최초로 국무장관에 임명됐다.
▲ 2008년 =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흑인 최초로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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