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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주연·군중 빠졌다···'스모킹건'없는 이상한 트럼프 탄핵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1/10 07:10

닉슨·클린턴 탄핵과 비교해보니…
74년, 백악관 녹음 테이프가 결정타
98년, 르윈스키 '얼룩진 드레스' 제출
트럼프는 아직 '스모킹건' 안 나와
13일 TV생중계가 청문회 동력 변수

정효식의 아하, 아메리카



7일 워싱턴 미 의회 하원 앞에서 케빈과 샤론이 "대가 제공이 압력"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식 특파원





지난 7일(현지시간) 전쟁터 같아야 할 미국 워싱턴 의회는 한산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한 지 44일째, 의회 앞에 탄핵을 촉구하는 군중은 없었다.

대신 하원이 있는 남관 앞 삼각 정원에 두 사람이 "대가 제공이 압력이다", "탄핵의 경적을 울려라(Honk for Impeachment)"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경적을 울리라는 건 닉슨 탄핵 때부터 구호다. 메릴랜드와 미주리 출신인 샤론과 케빈은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6주째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샤론은 "2011년 '점령하라'(Occupy) 운동 때처럼 수천 명이 나오지 않아도 트위터에 지지자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케빈은 "민주당 하원은 탄핵안을 통과시킬 것 같지만, 트럼프 편이 많은 상원이 유죄를 선고하고 파면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내년 대선에서 바뀌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치사상 세 번째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식 탄핵 절차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맥이 빠진 채 진행되고 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 때와 달리 특별검사와 중범죄 강제수사 및 기소를 위한 연방 대배심도 없고 핵심 주연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정적 증거(Smoking gun)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펠로시 의장은 "헌법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라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최대 마녀사냥이자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는 공방만 반복되고 있다.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에서 대선 경쟁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수사를 청탁한 전화 통화의 성격을 놓고서다.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공개 탄핵 조사가 진행중인 미 하원 지하 청문회장 앞에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효식 특파원





이날 탄핵 조사장인 하원 건물 지하 청문회장 입구엔 '일반인 및 언론인 출입 금지, 카메라·녹음기 반입 금지'란 붉은 경고문이 붙어있다. 미 주요 언론 기자 10여명과 카메라가 대기했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직원이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과 데븐 누네스 공화당 간사가 회의장을 떠났다'며 상황 종료를 알렸다. 캐서린 폴더스 ABC방송 기자는 "보통 오전 8시부터 6시까지 회의장 앞을 지키는 데 빨리 끝났다"고 했다. 이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보좌관인 제니퍼 윌리엄스가 출석해 비공개 증언을 했지만,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찰스 쿠퍼먼 부보좌관에 이어 "소환장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며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트럼프 탄핵 절차, 닉슨·클린턴과 무엇이 달라졌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972년 6월 대선 과정에서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한 사건은 닉슨 재선 위원회가 배후였다. 이어 73년 특검 수사와 상원 워터게이트 청문회를 통해 닉슨 대통령이 직접 사건 은폐에 관여한 증거가 발견됐다. 백악관 집무실의 모든 대화를 녹음한 닉슨 테이프의 존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닉슨이 테이프 제출을 요구한 아치볼드 콕스 특검을 해임(토요일 밤의 대학살)한 건 국민적 탄핵 요구를 불렀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조사 계기가 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스캔들은 르윈스키가 면책 조건부로 연방 대배심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 증언하면서 밝혀졌다. 르윈스키는 핵심 증거물인 얼룩진 푸른 드레스까지 제출했다. 클린턴의 숨겨진 사생활은 453쪽의 '스타 보고서'를 통해 낱낱이 공개됐다.




1974년 5월 9일 미 하원 법사위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공식 탄핵조사 청문회를 열었다. [미 의회도서관]





토머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정치학 교수는 중앙일보에 "트럼프의 탄핵과 닉슨 탄핵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탄핵 조사 이면의 당파적 성격"이라며 "닉슨 시대의 양당은 덜 양극화됐고, 워터게이트 특위에서 하워드 베이커와 로웰 와이커 같은 공화당 의원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클린턴 탄핵도 매우 당파적이었지만 트럼프처럼 대통령의 직무상 행위가 아니라 사생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혼외 성관계에 대해 위증한 게 탄핵의 이유였다"고 지적했다.




1998년 11월 17일 미 하원 법사위 클린턴 탄핵조사 청문회에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증언하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당시 여당 공화당 하원 초선 법사위원으로 닉슨 탄핵 조사에 참여한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6일 MSNBC 방송에서 "법사위 청문회를 막으려는 폭파 협박이 있었고 나와 가족들은 신변 위협도 받았다"며 "백악관에 갔을 때 닉슨 대통령이 직접 '개자식(SOB)'이라고 욕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은 공화당원이라면서도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적인 청탁을 한 것은 범죄 행위"라며 "바이든 조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4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은 내 판단엔 강요이자 뇌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특별검사와 대배심의 강제 수사 없는 트럼프 탄핵조사는 '행정특권(executive privilege)'이란 방어막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백악관은 이를 이유로 핵심 증거 자료 제출과 주요 증인 소환을 거부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가 관련된 모든 문서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의 뒷조사를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만나라고 요청한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는 "민주당의 탄핵 시도 자체가 반(反)헌법적"이라며 버티고 있다. 군사원조 보류에 관여한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도 자신은 물론 예산국 직원의 출석도 허용하지 않았다.


민주당으로선 13일부터 시작하는 공개 청문회가 탄핵 열기를 되살릴 마지막 카드다. 민주당에 유리한 비공개 증언을 했던 윌리엄 테일러 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 대행과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13일),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15일)가 나온다. 공영방송 PBS가 전체를 생중계하고 주요 방송도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1973년 CBS·NBC·ABC 지상파 3사가 교대로 중계한 워터게이트 청문회 생중계 시청률은 71%, 재방송까지 미 국민 85%가 시청했지만 핵심 증인이 빠진 이번 청문회가 얼마나 흥행할지는 미지수다.

펠로시 의장으로선 트럼프의 행정특권 방패를 깨려면 수개월 소송을 벌이고 내년까지 탄핵 국면을 끌고 가야 한다. 대선 선거운동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슈워츠 교수는 "트럼프의 핵심 전략은 지연 전술"이라며 "내년으로 넘기면 민주당은 훨씬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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