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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친구의 틀니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변성수 / 교도소 사역 

[LA중앙일보] 발행 2019/11/1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1/12 17:55

친구 딸이 전화해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얼마 전에 내게 "시간 있는 날 월남국수나 한번 하세. 있는 거라고는 시간과 돈 뿐일세"하던 친구다. 서로의 삼촌, 사촌, 오촌까지 이름을 다 외우는 사이로 경북 문경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자랐다. 미국에 와서도 20분 내 거리에서 살고 있다. 자주 못 만나서 늘 허전한 마음이었다.

그후 딸을 통해 들은 소식은 응급실과 집을 왔다갔다한다고 했다. 두 세번 병실을 방문했다. 수다스럽던 옛 이야기가 뜸해졌고, 말 없이 서로 시선만 주고 받을 뿐이다. 만나면 한동안 묻혀놓았던 한국의 정치, 사회, 교육, 종교에 대한 그의 논리정연한 말을 듣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시작도 못하고 헤어지곤 했었다. 너무 가까운 친구여서 자주 안 만나도, 시간을 같이 안해도 더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저녁 교도소 사역을 마치고 좀 늦었지만 병실을 찾았다. 마침 혼자 누워 찾아온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친구가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어깨동무하며 골목을 누비던 때의 따뜻했던 체온이 느껴졌다.

친구가 나보고 "부탁이 하나 있네"라고 한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나에게 친구는 "집식구도, 아이들도 늘 씻어 주는데, 오늘은 자네가 저기 탁자 위 컵 속에 있는 틀니를 좀 닦아 줄 수 있겠나"한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틀니를 씻어봤다.

그리고 둘이서 이야기도 별로 없었고 나는 조금 머물다가 늦게 병실을 나와 집으로 왔다.

다음날 정오쯤 친구의 딸이 전화해 "아빠가 오늘 아침에 소천하셨다"고 한다. 장례식은 직계 가족만 참석해 하라고 아빠가 부탁을 하셨단다. 그 친구를 위해 틀니를 씻어준 것이 이 땅에서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일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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