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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머니' 앞세워 남태평양에서 유럽까지

파죽지세 중국 일대일로
미·중 충돌 세계 곳곳 요동
중국 솔로몬제도에 교두보
뉴질랜드·호주도 '새우등'

미·중 경제전쟁의 충격이 갈수록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는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 충격은 '다운언더(down under)'로 불리는 호주·뉴질랜드에서 남태평양 작은 섬들에 이르고, 위로는 유럽 내륙 깊숙한 곳까지 미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미칠 것 같지 않은 호주·뉴질랜드도 우리와 같은 고민에 빠졌다. 왜 그럴까. 중국은 뉴질랜드의 수출 1위 국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아 한국과 똑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호주·뉴질랜드는 외교에서는 미국과 긴밀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는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핵심 동맹국이다.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협력하지만,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아 중국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의 파워는 더 나아가 유럽대륙 북부와 남태평양에 작은 점처럼 떠 있는 섬나라까지 뻗친다. 중국이 2013년 위대한 중화민족을 부흥시킨다는 '중국몽'을 선언하고 그 수단으로 내세운 일대일로가 본격화하면서다. 일대일로는 육로와 해상로로 세계를 연결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 굴기 프로젝트다. 참여국은 80개국이 넘어 사실상 전 세계를 연결한다.



독일 폐광촌 화려하게 부활

독일 서북부 뒤스부르크는 서독시대 독일의 대표적 산업 지역이었다. 독일의 유일한 천연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석탄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어 일찍이 광산이 발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글로벌화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산업 고도화에 따라 광산이 쇠락하면서 뒤스부르크는 순식간에 '러스트 벨트'로 쇠락했다. 한때 60만이 넘던 인구도 반 토막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랬던 뒤스부르크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죽어 있던 도시를 살린 '미다스의 손'은 시진핑이었다. 시 주석이 주도한 일대일로 정책이 중국에서 1만1179㎞ 떨어진 뒤스부르크를 되살렸다는 얘기다. 시 주석은 2014년 중국에서 화물을 싣고 뒤스부르크로 들어오는 열차를 맞이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도시가 유럽의 가장 외진 도시에서 가장 활발한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고 현장을 중개했다. 하루에 10여 차례씩 연간 6300편의 화물차가 들어오면서 사람과 투자가 몰려들어 도시가 활기를 띤다는 소식이다.

중국-독일 철도는 지구촌 물류 혁명을 일으켰다. 중국 대도시 충칭·우한에서 출발한 화물을 배로 실어 유럽으로 운송하면 45일 걸린다. 하지만 철도로는 13일 만에 주파한다. 중국은 앞으로 운송 기간을 1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현대 물류는 속도전이라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의 벽을 돌파한 물류 혁명이다. 중국은 '유럽의 남대문'이라는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항에도 일대일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시 주석이 지난 11일 그리스를 방문해 8000억원을 투자해 피레우스를 유럽 최대 상업항으로 키우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유다.

다시 남쪽으로 가보자. 이번에는 뉴질랜드·호주에서 다시 수천㎞ 떨어진 남태평양 섬들이다. 이 지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일본 충돌 이후 70년 만에 다시 거대 강대국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서태평양의 군사 거점인 괌을 중심으로 남태평양까지 장악해왔지만, 이제는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미국 중심의 지정학을 흔들어 놓으면서다.

중국의 무기는 '차이나 머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현지 상황을 소개한 툴라기(Tulagi)가 대표적이다. 솔로몬제도 남동쪽에 자리 잡은 툴라기는 열강이 그간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때마다 등장했던 곳이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국을 건설했던 영국은 남태평양 사령부를 설치했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이 섬부터 장악해 미국 진주만 공격의 전진기지로 썼다. '군사기지의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대국이라면 항상 침을 흘렸던 요충지다.

중국은 이곳에 베이징에 기반을 둔 국영기업을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75년 독점 개발권'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개발한 인프라는 민간은 물론 군사적 사용이 가능하게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 개발을 명분으로 기업을 앞세웠지만, 항만·공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중국은 2017년 스리랑카 항구를 99년간 조차하는 데도 성공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절 영국·프랑스·스페인이 힘을 내세워 써먹었던 수순 그대로다. 중국은 '인류운명공동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로·항만·공항부터 체육관·운동장 같은 생활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투자 패키지를 앞세워 미국의 문턱까지 진격하고 있다.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밀접한 관계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 대만을 고립시킴으로써 미국의 힘도 빼기 때문이다. 역시 수단은 경제 교류다. 그 대가로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강하게 압박한다.

미국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

이 여파로 인구 63만명의 솔로몬제도에도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관광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어 개발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솔로몬에는 최근 중국인들이 돈을 싸 들고 몰려들고 있다. FT에 따르면 중국인 이주자는 최근 수년 만에 5000명으로 불어나 솔로몬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그 뒤에는 현대판 왕 서방의 돈으로 불리는 '차이나 머니'가 있다. 전주는 중국 정부다. 중국 기업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지분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솔로몬을 통째로 개발하고 있다. 항구와 공항을 신설하거나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차이나 머니를 '융단 폭격'하고 있다. 건설 사업에 동원되는 인력도 철저히 중국 본토에서 공수된다. 경제 개발을 내세우지만, 자본과 기술을 중국이 독점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식으로 중국은 필리핀 근처 팔라우부터 미크로네시아에서 마셜군도·솔로몬제도를 거쳐 피지·통가까지 남태평양을 휩쓸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남태평양 국가 지도자들의 중국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면서 급속도로 친중국 정책을 펴게 되는 배경이다.

미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급한 대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인프라 투자를 제시하면서 남태평양 섬들에 대만과의 단교를 중지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여파가 크다. 미국 스스로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자 중국의 공간이 커지게 됐다.

남태평양 국가들은 표면적으로는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과 밀접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 국가가 생산하는 목재·광물·수산물·팜유를 중국이 빨아들이고, 이들 국가가 소비하는 장난감에서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입 물량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헤게모니 싸움이 앞으로 전 세계를 어떻게 갈라놓을지 현재로선 가늠이 쉽지 않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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