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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노력이 운을 대신할 수 있을까

내가‘운’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가 나더러 방송국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모 방송프로에 엽서를 보냈는데 당첨이 돼서 상품권을 받게 되었다며 내 팔을 끌었다. 집과 학교 말고는 딴 곳을 다녀본 적이 없던 어리바리한 나는 친구를 따라 버스를 타고 광화문 근처에 있던 M방송국을 방문했다. 몇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떤 분이 내 친구 이름을 확인하더니 서랍을 열고 상품권을 건네주었다.

공짜로 상품권을 얻은 친구는 나더러 “이번에는 네 이름으로 엽서를 한 번 보내보자”고 했고 나는 엉겁결에 승낙했다. 또 두 번째로 보낸 엽서가 채택이 된 것이다. 나의 신원이 필요했던 친구는 나를 데리고 방송국에 가야 했다. 이해관계를 따질 나이가 아니었으니 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수업이 끝난 후 방송국으로 향했다. 우리를 알아보던 방송국 아저씨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또 왔니?”

“이번에는 제가 아니고 이 친구가 탄 거예요.”



나를 가리키는 내 친구를 바라보던 그 방송국 아저씨도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상품권을 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재수가 좋은 그 친구가 더욱더 달리 보였다.

얼굴도 예쁘게 생긴데다가 친구는 뭐든지 나보다 잘했다. 질투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친구네는 여러 채 집을 세를 놓고 살아서 그런지 생활도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살았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면 일정한 직업이 없어 보이는 데도 친구 아버지는 학원비를 선뜻 친구에게 주었다. 추석 때나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던 나는 멋진 사복을 입고 나타나는 친구가 한 없이 부러웠다.

진로가 달라 고등학교 때부터 사이가 뜸했던 그녀를 성인이 되어 우연히 만났는데 예전의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몹시 불량해보였다. 그녀의 예의 없는 태도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이 변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선생님한테도 인정을 받고 언제나 운이 좋다고 여겼던 친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나는 스스로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여겼다. 소풍을 가면 남들 눈에는 잘 띄는 보물찾기 종이 쪽지가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품을 탄다든지, 복권 따위에 기대를 갖지 않았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운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안 될 일은 기도를 해도 성취되지 않았다. 차라리 기대나 하지 않았으면 실망도 없을 텐데 가슴을 조이며 기도를 하면 그 만큼의 크기만큼 낙담이 커졌다. 정말로 운칠기삼처럼 노력보다 운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일까?

살다보니 확실히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하다. 솔직히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맥이 풀린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운이 없으니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운은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순간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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