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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글로컬리즘으로 정체성 찾자

나는 정말 한국사람인가? 라는 엉뚱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생긴 것이나 식성 따위는 틀림없는 한국사람이지만, 머리 속에는 서양 것이 잔뜩 들어 있으니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미술의 최고봉인 겸재나 추사보다 고흐나 피카소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안다. 베토벤의 음악은 자주 듣지만, 세계 최고의 음악으로 인정받는 우리의 ‘수제천’은 어쩌다 아주 어쩌다 듣는 정도다. 철학에서도 소크라테스부터 칸트, 니체, 헤겔 등 서양사람들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우리나라 철학자의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공자나 노자가 훨씬 익숙하다.





문학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글이라는 절대적인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에서도 역시 서양 작가들을 우리 작가들보다 높게 평가하고 우러른다. 우리 문인 중 ‘문호’라고 불리는 작가가 있는지 모르겠다.



곰곰이 따져보니, 머릿속의 주요 부분은 서양 것이 차지하고 있고, 정작 소중한 우리 것은 변두리에 구색 맞추기처럼 아주 조금 있는 식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한복의 아름다움은 관광지에서 얄궂게 변형된 모습으로 보거나 명절날에나 겨우 만날 수 있다. 한옥도 민속촌 같은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건 문제 아닌가? 과학 기술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철학, 문화, 예술 같은 정신세계가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은가. 아무리 못해도 절반 정도씩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뻔하다. 어릴 적부터 서양 것을 우러르고 우리 것은 낮잡아보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육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우리 것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런 교육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그런 식으로 변해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대화란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서양을 배우는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영어를 가르치고, 조기유학을 보내는 등의 일그러진 교육이 극성을 부린다.



“이보슈! 세계화된 지구촌 시대에 그런 게 무슨 문제요? 구태여 한국사람이라는 걸 내세우고 고집할 필요가 뭐 있소? 사실 뭐, 우리 것 중에 뚜렷하게 내세울 것도 없고…. 안 그렇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이런 말에 한 마디로 똑부러지게 대답할 말이 없다. 하지만, 세계화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하다, 미국 같은 다민족 다문화사회에서는 한층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글로컬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을 합성한 말로, 세계화와 지역화의 장점을 한데 버무린 개념이다.



한국의 대표적 석학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글로벌리즘이냐 로컬리즘이냐 하는 이자택일의 선택지를 넘어서 ‘글로컬리즘’의 통합적인 장을 마련하는 문화읽기와 문화만들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겨레의 저력을 확인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가령,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었다. 식민 지배, 동족상잔의 전쟁, 분단 등등. 하지만 우리는 그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강국으로 자랑스럽게 우뚝 섰다. 그 저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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