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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

[LA중앙일보] 발행 2009/02/05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9/02/04 20:32

이종호/편집2팀장

"나는 비주류다. 마이노리티다"

마흔 셋에 미국에 온 지인이 있다. 그가 이것을 깨닫는 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들은 대로 미국은 기회의 땅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종이나 종교 피부색 국적에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은 낯설었고 가는 곳 마다 주눅이 들었다. 영주권 때문에 벌였던 비즈니스도 어긋났다. 그 와중에 가졌던 돈마저 홀라당 날렸다. 모든 게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다.

40여년을 주류의 편에서 머조리티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다.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서 일했다. 큰 소리 치지도 않았지만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막일 밖에 없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신의 자비를 믿었다.

그는 다시 시작했다.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신발끈을 동여맸다. 그러기를 2~3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그마한 셀폰 가게를 꾸릴 수 있게 됐다. 여전히 힘겹긴 하지만 감사로 이겨내고 있다.

이게 어디 지인만의 이야기일까. 수많은 한인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얘기다. 놀라운 것은 이보다 훨씬 더한 상황 속에서도 그냥 주저 않는 사람보다 다시 서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저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국 사람은 비주류에 속하는 것을 못 견딘다. 태생적으로 마이노리티가 맞지 않는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달려야 한다. 내가 못했다면 내 아이 내 손자라도 그 쪽으로 편입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이민의 삶을 버티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악착을 보였기에 땀을 흘렸기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따라갈 수가 있었다. 타운 한복판에 번듯이 자리 잡은 한인 소유의 건물들 어떤 미국 기업 못지않은 알짜 한인 기업들 그리고 주류 사회 구석구석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2세 3세들. 그들에 의해 우리의 이민 역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인가. 유례없는 불황 앞에 다시 한인들이 흔들리고 있다. 페이먼트를 못내 차압 위기에 처한 사람 카드 빚에 쫓겨 부도 위기에 내몰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주류에의 꿈은 이렇게 또 멀어져 가는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넘어지면 분연히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민족이 아닌가.

미국서 운전을 하다보면 가끔 'DETOUR'라 쓰여 있는 표지판을 만난다. 공사 중이니 돌아가라는 말이다. 그럴 때 돌아가야 한다. 귀찮다고 무시하다가는 오히려 길만 헤매고 더 늦어진다. 인생 길에도 가끔씩 이런 사인을 만날 때가 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순탄하던 삶이 예기치 못한 일로 난관에 부딪칠 때가 그 때다.

그러면 말없이 돌아가야 한다. 그게 슬기로운 방법이다. 어리석은 자는 괜히 빨리 가겠다고 서두르다 정말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고 만다.

너무 힘이 드는가.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DETOUR 사인을 만난 시기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픈 거라고.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기쁜 것이라고. 이런 태도가 마음을 바꾼다. 삶을 뒤집는다. 우리가 긍정적이 되도록 날마다 마음을 잡도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주류였던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기에 지금 주류가 아니라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종이 한 장이다. 힘을 내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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