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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삿짐이 ‘형벌’이 될 때

나이 들어서 이사는 어렵기가 형벌 수준이다. 평소에 누려온 과분한 욕심과 오지랖으로 쌓아 놓은 무절제의 무게를 감당하자니 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



셋째 손자를 보면서 아들네와 합쳤던 살림을 막내가 다섯 살이 넘어서 다시 나누었다. 아들네와 함께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스테이징을 했다. 일부 가구와 대부분의 이삿짐을 창고로 옮겨서 집이 널찍하게 보이도록 잘 정돈했다. 집이 팔리기까지 석달 동안을 별 불편없이 잘 견디었다. 그러고 보니 창고에 보낸 물품들이 없어도 좋을 만했다.





이사를 하고 창고에 두었던 이삿짐이 도착했다. 없어도 좋을 것같던 짐들을 하나씩 풀면서 버릴까 말까 고심했다. 대부분이 그에 묻은 사연과 애착으로 버리기 힘들었다. 다시 이 구석 저 구석 쑤셔 넣느라고 고심했다.



발이 아파서 오래 서있지 못하는 나는 이걸 다 정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게다. 기억력까지 가물가물해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그걸 어디다 두었더라?’ 생각할 것이다. 더욱이 나처럼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살림이 산뜻하고 간단하지 못하다. 자재와 공구를 구비하다 보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물질이 귀하던 시절에 태어나 늘 부족한 가운데 자란 나는 아들 며느리와 달리 모든 것이 소중하다. 새집에서는 필요 없다고 버리려고 내놓았던 램프 스탠드를 너무 아까워서 슬쩍 가져왔다. 램프 스탠드 받침과 폴이 고급스럽고 스테인드 글라스의 셰이드도 예쁘다. 전선을 뽑아내고 3단의 높이를 1단, 2단으로 줄이고, 셰이드에 흙을 담아 그라운드 커버를 심었다. 아직은 뿌리를 내리는 중이지만 자라서 길게 늘어지면 독특하고 멋진 운치로 예쁠 것을 상상하니 물주기도 즐겁다. 재활용해서 만든 물품, 아니 작품들은 애착이 가고 볼 때마다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누가 보고서 칭찬이라도 해주면 기쁨은 배가 된다. 이러니 살아있고 수족을 움직이는 동안은 내 주변의 복잡함을 면키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난 4년여, 3대에 걸친 신세대와 구세대가 부대끼던 대가족, 누군가 하나는 성내고 삐치고, 누군가 한둘은 싸우고 울고, 누군가 하나는 병이나 아프고, 그 자글자글 끓던 모둠 냄비의 어우러진 진국 맛은 더 이상 없다. 대신 남편과 아옹다옹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남편은 정리를 천천히 하자는데 나는 빨리 숙제를 끝내고 싶어 조바심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입만 바쁘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닦고 쓸고 어루만지면서 이 물건으로 내가 진정 행복한가를 물어본다. 그냥 예쁘니까 또는 값지고 좋은 것이니까 라는 이유로는 두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가져서 즐길 수 있도록 추려냈다.



법정 스님과 같이 무소유를 실천할 만큼 초월하지 못한 나는 몸이 감당하는 만큼만 욕심도 허영심도 부려야한다. 수시로 정다운 손길과 눈길의 교감을 나누는 물건만 남겨야 한다. 그래야 형벌 수준의 무게를 끙끙대면서도 달갑게 짊어질 수 있다. 돌아보며 감사할 여유도 생긴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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