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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초창기 한국 야구

민병국 / 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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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12/07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2/06 19:02

1903년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는 종로 YMCA에 부임하면서 야구 장비를 가져와 처음으로 조선 사람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손가락이 4개 뿐인 가죽 글로브와 나무 배트, 그리고 딱딱한 야구공을 가져왔다. 당시 상투머리의 어르신들은 “이것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며 궁금해했다.

어린 시절 필자도 야구 글로브의 손가락이 왜 4개인지 궁금했다. 두 번째 손가락을 밖으로 내놓고 게임을 했는데 간혹 야구공에 손가락을 다친 경험이 있다. 그 후에 야구 글로브도 다섯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야구 배트는 나무 재질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리틀 리그나 중학생들은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한다. 스윙 파워가 약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배트는 가볍고 탄력성이 좋다.

야구장 시설도 초기에는 열악했다. 경기 중 파울볼은 대부분 관중석으로 떨어지지만 1950~60년대 서울운동장은 관중석이 크지 않아 일부는 외야 펜스를 넘어 동대문 전찻길로 날아갔다. 그래서 볼을 줍기 위해 전담 직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절 한국은 야구공 하나 만들지 못했던 때였다. 야구 장비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일본강점기 때 고라쿠엔 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친 선수가 있는데 바로 이영민 선수다. 한국의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가 있을 무렵 이영민 타격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또한 60년 전 실업야구 연맹전에서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번외 경기를 갖기도 했다. 당시 국내 선수들의 게임에선 홈런이 가물에 콩 나듯 했는데 미군팀에서는 매 게임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초기에 열악했던 한국 야구가 이제는 프로야구를 운영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배출할 정도로 발전해 감개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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