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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자폐 아동을 돕는 자폐 환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LA중앙일보] 발행 2019/12/10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12/09 18:28

내가 소년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일곱 살 때였다. 소년은 수줍게 앉아있었고 불안한지 계속 손톱을 깨물었다.

“아이가 머리는 무척 좋은데 계속 다리를 흔들어 대고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요. 아이 선생님이 혹시 주의산만증이 있나 검진을 받아보라고 해서 왔어요.”

가족력을 물어보니 소년의 아버지는 남미에서 이민 온 사업가인데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고 했다. 가끔 생활비도 안 주고 몇 달씩 집을 비우면 소년의 엄마는 친정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젊은 시절 모델을 했을 만큼 그녀는 동양 여성 치고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엄마의 쾌활한 성격에 비해 소년은 말이 없고 다리는 꼼지락거렸지만 항진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 검사를 해보니 주로 산만한 증세만을 가진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inattentive type)로 나타났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도움, 가정에서 부모가 도울 수 있는 방법 등을 의논한 후 모자는 떠났다.

그런데 소년의 어린 시절 과거력을 알기 위해 의료 기록을 읽으며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언어 발달도 꽤 지연됐다가 늦게서야 개발된 듯했다.

자폐증 환자 중 많은 경우에 주의산만증이 동시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자폐증 치료는 특별한 약물이나 요법이 없어 행동치료(Behavior Therapy)를 통해 사회생활하는 방법을, 가능하면 어린 나이 때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배움을 통해 지식은 물론 삶의 방식을 익혀야 한다.

자폐증과 주의산만증이 동시에 있으면 빨리 주의를 집중시켜서 행동 치료나 언어 치료, 친구 사귀는 방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소년은 아데랄이라는 항진제에 잘 반응해, 시험을 볼 때 태도도 좋고 시험지도 끝까지 살피며 이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단다.

그 후에도 소년은 좀처럼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적이 없고, 묻는 말에도 대개 한 두마디로 끝내버렸다.

그런 아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같은 반에 있는 멕시코 출신 여학생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그녀가 꽃다발을 가지고 왔었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이 기뻐하셨단다.

"너는 어떻게 느꼈니?” 물으니 자신도 반가웠다며 말을 끊었다. 졸업식 때 많은 상을 받았다며 엄마는 계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소년은 집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명문대학에 입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1년 후 소년은 엄마와 함께 다시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태어난 후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기숙사와 학교 캠퍼스에서 생활한 그는 누구와도 사귀지를 못했고 공부도 할 수 없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정신과 의사를 몇 번 만나고 약물 처방도 받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집 주위에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 공부를 하니 친구도 생기고 집중도 잘 된단다.

그 이후로 소년은 청년이 돼서 혼자서 나를 찾아오고 있다. 친구의 소개로 몇 명의 자폐아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서 한다. 몇 달 만에 나를 찾은 그는 자신의 장래 계획을 조심스레 말한다. 자폐아들을 도와주다 보니 심리학에 흥미가 많아졌고 연구실에도 가 보았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직도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 심해서 앉을 때에는 두 손을 아예 엉덩이 밑에 깔고 앉는다며 내게 보여준다.

그의 계획에 나는 무척 기뻤다. 경증의 자폐증 환자라고 하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나 사귐이 어려운 장애를 무릅쓰고 자신보다 심한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그 청년. 오늘 그의 엄마가 옆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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