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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음주 운전의 악몽

조성환 / 시조시인
조성환 / 시조시인  

[LA중앙일보] 발행 2019/12/14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2/13 18:07

싸늘한 수갑을 차본 본 기억. 이맘때면 늘 생각나는 부끄러운 추억이다.

세상살이에 술만큼 좋은 식품이 또 있을까. 지난한 한 생을 건너는 동안 예기치 않은 난관을 버티고 견디게 해준 동력, 그에게서 위로 받고 충전 받은 힘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술김을 빌려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이영애보다 더 예쁜 딸아이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 열한 살짜리 딸아이가 12월의 찬비를 맞으며 제 어미 손을 잡고 면회를 왔다. 철창 너머 초췌한 모습의 아빠를 본 딸아이는 그 예쁜 눈망울에 글썽글썽 눈물을 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유치장 변기통 옆에서 밤새워 울었다.

아빠, 술 먹고 운전하면 안 돼. 나는 그날 이후 20년을 딸과의 약속을 잘 지켜왔다. 그 한 번의 일로 술은 해코지를 하는 비수도 함께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

12월이다. 한 해가 풍성했거나, 헛고생으로 마음이 추운 사람이라도 들떠 있을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한 장 남은 달력에 온갖 상념이 묻어 나온 탓이다. 호텔 연회석이나 조그만 찌갯집에도 머리 맞대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들의 소리가 문틈으로 왁자하게 새어 나온다.

이런 계절엔 두루두루 만나야 한다. 사람은 사회성을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간 소원했던 관계 회복도 이때가 적격이다. 만나면 술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친화적 분위기를 띄워 주기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모임에 갈 때는 차 키를 집에 두고 나서야 한다. 예전과 달리 우버도 있고 경쟁적인 택시회사가 많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을 덜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굳이 운전대를 잡으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예전엔 나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문제가 키 하나에 달려 있는데도 뒷생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은 확률적으로 수갑 받을 1순위에 속한다.

한 번 수갑을 차면 아주 오랫동안 사람 취급받기가 힘들다. 관공서뿐 아니라 어떤 곳에서도 끝까지 따라다니며 눈을 흘긴다.

시민권 심사 때도 심사관은 눈을 치켜들고 꼭 짚고 넘어간다. 특히 보험회사는 몇십 년 모범운전자라도 하루아침에 발길질로 쫓아낸다. 그런 외적 불이익보다 더 아픈 것은 가족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부모에게 혹은 자식에게, 또는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따가운 눈총이 늘 따라다닌다.

뒤에서 번쩍이는 경찰차를 백미러로 보는 순간 몸이 먼저 알고 부르르 떨던 절망감. 서늘한 은색 수갑을 뒤로 차고 경찰차 뒷자리에 구겨 넣어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뵈는 육신. 온갖 범죄를 저지른 이들과 함께 등 떠밀려 들어간 음습하고 낯선 유치장.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장면들이 내게 닥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시간에도 연회장, 식당 주변에는 경찰들이 눈을 가늘게 치켜뜨고 길목을 지켜보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막바지에 더는 그런 악몽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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