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8.0°

2020.01.26(Sun)

구원자인가 악마인가…사람을 살리고 죽인 노벨상 후보자의 두 얼굴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2/13 19:03

전범자로 몰린 유태계 독일 과학자
질소 비료 개발해 식량 위기 탈출
독가스도 개발로 친척까지 희생돼

Focus 인사이드




프리츠 하버는 인류를 기아에서 구하는 방법을 발명했지만 그가 만든 독성 물질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만들기도 했다.[사진 wikipedia.org]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출간한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인구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대개 가족계획을 떠올리겠지만, 당시 그는 성직자를 겸했음에도 전쟁ㆍ기아 같은 잔인한 방법까지 동원해야 한다고 언급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더는 인구론은 유효하지 않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상당히 공감을 얻었던 이론이었다. 문제는 이를 15세기 대항해시대의 개막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 경략(經略)에 나선 서구가 침략의 절정기였던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그럴듯한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1800년, 약 10억 명이었던 인류는 1900년에 이르러 16억 명 정도로 늘었고 이로 인한 식량 문제는 심각했다.




중세 당시의 농사 모습. 퇴비나 거름을 썼어도 지력 회복을 위해 휴경지를 두어야 했다. 때문에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한계가 많았다.[사진 wikipedia.org]






그래서 제국주의자들은 내 배를 채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피지배자에 대한 혹독한 수탈과 착취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이 더 차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비화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국민을 해외에 이주시키고 현지에서 수탈을 독려해도 본국의 인구 또한 계속 늘어나기에 근본적으로 농업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그러나 개간을 통해 농경지를 추가 확보하고 수리 시설을 확충하더라도 늘어가는 인구를 먹일 수 있을 만큼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퇴비를 사용해도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휴경지를 두어야 하므로 불가피하게 놀리는 땅도 많았다. 신대륙에서 채굴된 칠레초석을 사용하면 놀라울 만큼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비싼 데다 자원이 한정되어 궁극적 해결 수단이 될 수 없었다.




경제학자이자 성직자이기도 했던 토머스 맬서스. 그가 주장한 인구론은 지금은 혁파되었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행위에 나설 때 그럴듯한 이론적 배경으로 삼기도 했다.[사진 wikipedia.org]






이처럼 침략마저 정당화했을 만큼 이성이 마비되었을 때 질소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1908년 공기 중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는 질소를 농축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식량 생산량이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증가하였다. 만일 그의 업적이 없었다면 아직도 인류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질소비료의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는 사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사진 wikipedia.org]






질소비료의 등장이 없었을 경우 생존 가능한 인류의 최대치가 36억 명 정도다. 현존 추정 인류가 77억 명 정도이니 하버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1918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했다. 사실 업적만 놓고 보자면 화학상이 아니라 평화상을 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전사한 영국군 시신. 제1차 대전 후 공식적으로 화학 무기는 생산ㆍ보유ㆍ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사진 wikipedia.org]






제1차 대전 당시에 독가스를 만들어내고 전선에 나가 연합군을 상대로 실험까지도 실시한 경력 때문이었다. 전후 국제사회가 화학무기 사용 제한에 동의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도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을 만큼 하버가 만든 독가스의 살상력은 엄청났다. 문제는 당국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동료 학자이자 아내인 클라라가 반대하며 자살하였을 정도로 그가 개발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업적과 별개로 국제 사회가 하버의 노벨상 수상에 반대한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에 그는 전범으로 몰려 스위스로 피신한 상태였다. 이후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소장으로 다시 영전해 독일 화학 발달을 주도할 수 있었으나 1933년 나치의 등장과 함께 몰락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독일에서 쫓겨나 1934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객사했다. 그런데 그의 업보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버가 1920년대에 살충제로 만든 치클론 B에 의해 수백만의 유태인이 학살되었고 그렇게 죽어간 이 중에는 그의 친척들도 있었다. 하버는 수십억의 인류가 더 살아갈 수 있는 결정적 방법을 만들었지만 수백만이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만든 인물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모든 성과가 긍정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위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하버는 부족한 천재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

핫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