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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두루미 밥' 된 참정권

김석하/탐사보도부 데스크

한국 국회는 '여우'가 됐고 재외국민은 '두루미'가 됐다.

잘 알려진 이솝우화에서 여우는 부리가 긴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는 넓은 접시에 고깃국을 대접했다.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이 딱 이 모양이다. 뭔가 좋은 걸 내놓은 것 같은데 실상은 좀처럼 먹을 수 없게 돼 있다.

막상 참정권 시대가 열렸지만 정작 투표할 방법은 극히 제한된 것과 같다.

현 참정권 법안에는 투표방법을 공관투표로 국한했다. 투표할 사람은 선거인등록을 하기 위해서 공관을 찾아야 하고 또 투표하기 위해 다시 공관을 방문해야 한다.



한국처럼 투표소가 동네 여기저기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일례로 LA총영사관은 중.남가주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절반과 애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 등 4개 주를 관할하고 있다. 이 지역의 총 면적은 110만 평방km. 대한민국(남한) 전체가 10만 평방km인 것에 비하면 무려 11배나 크다.

이렇게 광활한 지역에 투표소는 LA총영사관과 LA문화원 달랑 2곳 뿐이다. 한국식으로 보자면 서울사는 유권자가 부산을 왕복하고 대구에 있는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선거인등록도 해야 하니까 똑같은 '투표여행'을 2번 해야 한다. 아예 두루미의 부리까지 묶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 우편투표 인터넷투표였다. 그러나 여야는 선거의 공정성을 들어 이를 제외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편.전자투표를 배제한 방식은 되레 공정성을 최악으로 훼손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한국서 선거가 공시되면 재외국민은 우선 선거인등록을 해야 한다. 선거일 전 5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3개월간이다. 이 기간동안 한국 정계에서 '지령'을 받은 정치 모리배는 전세 버스를 대절 '투표 사각지대'에 거주하는 일단의 유권자를 태워 공관으로 데려온다.

오랜 시간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당과 후보에 대한 홍보가 이어지고 슬쩍 금품도 나눠준다. 마찬가지로 6일간의 투표 기간에도 같은 방식을 답습한다. 과거 한국의 저질 선거문화가 재연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해외 한인사회는 꼼짝없이 '덫'에 걸린 꼴이 된다. 잘못은 일부 불순한 한국 정치인과 한인사회 정치꾼이지만 비난은 해외동포사회로 쏠리게 된다.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한국과 한인사회 내 여론은 "거 봐라"하면서 칼날을 곧추세울 것이 뻔하다.

우편투표 배제는 이렇듯 투표율 하락과 오히려 부정.탈법선거를 조장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실무부서인 외교통상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우편투표 배제로 인한 투표율 저조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며칠 전 양승태 중앙선관위원장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투표율 하락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현재로서는 '해외 표'에 영향받기 싫은 정치권이 구조적인 모순을 조장해 놓고 그 잘못은 동포사회에 넘기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뿐이다. 첫 선거 이후 "투표율도 낮고 부정선거까지"라고 말하는 여우의 간교함을 경계해야 한다.

여야는 이달 중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재구성해 참정권의 후속 조치를 다룬다. 한인사회는 어느 당이 어느 의원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주의깊게 지켜봐야 한다. 두루미는 여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놨다. '표가 있는' 동포사회는 앞으로 한국 정치권에 호리병을 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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