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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크메르 소녀의 미소

소녀들의 웃음이 밝고 깨끗하다. 8달러짜리 티셔츠를 5달러에 흥정하던 여동생이 그들의 웃음에 물들어 따라 웃는다. 한 소녀가 동생의 두 손을 자기 가슴 앞으로 끌어당겨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와 왼쪽 손가락 한 개를 펴준다. 6달러. 아유 예뻐라, 동생이 소녀의 손바닥에 8달러를 얹어준다.

눈이 웃는다는 말의 실재를 크메르에서 만났다. 어금니까지 드러나도록 웃는데 눈빛이 한없이 부드럽고 선량하다. 온 몸에서 우러나는 미소가 말한다.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단다.” 샹그릴라가 따로 없구나 싶다.

12세기 건축물에 새겨진 크메르인의 미소가 경이롭다. 문화재 곳곳, 방대한 건축물의 벽과 공간, 바위 면면에는 섬세하고 정교한 부처상이 가득하다. 표정이 다양한데 한결같이 친근하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이랬을까. 얼굴 곡선마다 유려한 리듬이 실려 있다. 따듯하다.

부처의 농익은 천년 미소가 DNA 가닥에 실린 걸까. 이런 미소를 매일 보고 자라서인가. 크메르인의 미소가 힐링과 위안을 준다.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평온과 고요에서 빚어진 미소 속에 자비의 메시지가 배어있다. 바라보고 느껴라. 신의 뜻에 따라 자연과 더불어 깨끗하게 살아라. 젊어서는 생각과 언어와 행동을 청정하게 하고 나이 들어서는 덕을 많이 쌓아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라. 참 너를 깨달아 차원 다른 세계로 가거라. 아,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굴 근육을 이루는 결 때문인가.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말이 없으면 화난 표정이라고 한다. 역사가 하도 굴곡져서 그렇단다. 크메르의 후예 캄보디아의 미소를 만난 후에 그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우리 못지않은 아픔을 지닌 나라 아닌가.

캄보디아. 27년간의 내전으로 가난과 공포에 압도당한 나라. 1975년 크메르루즈 집권 4년 동안 약 200만 명, 전 국민의 25%가 학살당하여 인류역사상 비극의 극치를 보여준 나라. 킬링필드 유골전시장과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그 끔찍함에 고개가 절로 돌아가고 두 눈이 아예 감겼다.

GNP 1200달러로 가난하고 또 가난한 나라. 집집마다 장애자가 있는 나라. 인간이 만든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 발목지뢰가 수백만 개 묻혀있는 나라. 지금도 연간 수백 명의 발목이 잘려나가는 나라. 그래도 사람들은 부처의 미소를 짓는다.

한 친구가 그랬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속에 슬프고 우울하고 불행한 초로의 사내가 들어있더라고. 그는 무조건 웃고 미소 짓기로 작정했다. 그는 이제 정말 잘 웃는다. 지난하고 눈물 나는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나도 언제부턴가 웃기로 작정했다. 무심 상태인데도 속상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다. 이제는 웃는 낯꽃이 밝아서 보기 좋다 한다. 낯꽃, 얼마나 이쁜 말인가. 웃는 얼굴에 장미일지언정 던지지 못하리라. 미소 짓고 또 짓다 보면 크메르 부처의 미소를 닮을 수 있을까. 그 미소, 마음 벽에 붙여놓고 연습해야겠다.


하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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