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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 운명의 코드를 찾아서

내가 명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속물적이라고 조롱을 받을지 모르지만 언제쯤 내 운이 트이게 될지 궁금해서였다. 차포 떼고 한 마디로 뚝 잘라 말한다면 언제쯤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 끙끙 거리다 어느 날 드디어 내 운명의 코드를 열게 됐다. 어설픈 지식이지만 인성이 4개나 있는 명식은 재물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보였다. 나는 팔자대로 그럴 만한 때에 그 일을 했고 운명대로 지금껏 살고 있었다.

그동안 거쳤던 수많은 직업들을 떠올리니 소설가라는 나의 직업이 ‘업’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업’이라고 표현하니까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행위를 ‘사각의 형틀’이니 하며 대단한 고행이나 하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자신의 일을 알아 달라고 엄살을 떠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행을 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게 문학이라면 굳이 문학을 할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억지로 하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만 ‘업’은 전생에 지은 소행 때문에 현생에서 받는 응보이고 인도에서는 신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제도로 천민들을 조종했다고 하는데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그 깊은 의미를 어쭙잖은 지식으로 왈가왈부 정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직업(職業)이라는 한자어는 희한하다. 직(職)은 생존을 위해 갖는 돈벌이 수단이고 업(業)은 전생의 행위 때문에 현재 해야 할 행위이다. 언뜻 보면 같은 뜻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다. 마치 두 단어의 조합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영원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로망은 잘 사는 것이다. 잘 살고 싶으면 보수가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려고 기를 쓰는 부모들의 열정이 어디 한국뿐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직(職)만 이루고 업(業)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맨발로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던 한 인도 남자의 평안한 미소였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신의 뜻’이라던 그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되다니. 천민이라는 신분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언덕을 오르던 팬티 한 장 걸친 남루한 뒷모습을 보던 그때, 나는 오만했다. 천민이 아닌 내게는 업이 없다고 여겼기에 그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거다. 업은 천민들에게만 해당하는 업보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유명인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직으로서는 완벽했을 테지만 업에 대한 사유가 없는 결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해결해야 할 업이 함께 들어있다. 내 팔자에 숨겨진 인생의 코드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그 오묘한 진리를 알게 되니 떼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점점 사그라든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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