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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즐거움도 슬픔도 잠시 머물고 갈 뿐

간밤에 고인이 된 친구를 만나 손잡고 걷는 꿈을 꾸었다. 가끔은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살아있는 분들을 꿈에서 뵙지만 망자와 꿈 속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 일은 처음이다.

여고시절 뒷자리 내 짝꿍은 딸 아들이 30대 후반의 나이에 연달아 결혼하고 손자 손녀를 보더니 갑자기 희소암을 앓다 갔다. 양호 선생으로 좋은 일도 많이 했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살았다. 가톨릭 신자인 친구는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자신의 후회 없는 삶을 전화 속의 마지막 인사로 멋지게 남기고 떠났다.

우린 여고시절 만나 우정을 나누다 내가 군인 남편 따라 자주 이사 다니며 연락을 못했고 또 미국으로 이민 오니 한동안 다시 소식이 끊긴 채 살아왔다. 시기하지도 않고 늘 긍정적으로 “오매, 그래야. 잉” 구수한 고향 사투리로 내가 하는 말마다 맞장구쳐주던 온순한 친구였다.

지난밤에도 오랜만에 이메일을 여니 또 다른 부고 소식이 들어 있다. 보고 싶은 친구를 꿈에서 만나니 기쁘기도 하지만 기분이 묘하다. 이런 날은 외출을 삼가고 그리운 고인들을 향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나는 일이 지천에 깔려있는 뒷마당으로 나간다. 눈이 오지 않는 샌디에이고는 일 년 열두 달, 자연을 돌보아야하니 내 업보인가보다. 남편이 잘라 놓은 산더미 같은 비파나무 가지들의 이파리들을 거름으로 쓰려니 나는 일일이 자른다. 손과 발이 움직이는 행보를 따라 팜스프링스에서 뵈었던 청화스님께서 조언해주신 ‘나무아미타불’을 마음으로 조용히 수백 번 수천 번 염불한다.

스님들은 동안거 수행을 하시는데 우리 집 뜰이 나는 법당이며 고행의 수행 터이다. 내 정성에도 아랑곳 않고 열매는 잘 열리지 않지만 꽃피는 봄이 오고 여름엔 초록 빛깔을 제공해주는 나무들. 얼마 전 배나무와 석류나무의 노란 단풍을 잠시 보았는데 지금은 빈 나무가 되어 침묵의 기운을 품고 있다.

오래전 삶의 번뇌를 털어버리고 묵묵히 일하는 시간이 좋아 나는 뜰일을 시작했다. 펑펑 울기도 하고 가슴에 일어나는 분노를 꽃삽으로 흙을 뒤엎으며 스스로 위로했던 중년의 지난날들에 피식 웃기도 한다. 살아오며 세상 때가 묻어가는 탓인지 순수한 감정이 무디어져 가는 자신에 조금은 슬퍼진다.

어제 지인이 이메일로 보내온 서산대사의 해탈시가 떠오른다.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으니 잠시 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삶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올해도 마음으로나마 중앙일보의 독자님들과 좋은 일, 슬픈 일, 병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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