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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리바는 떠날 터이다

나는 ‘거기’로 간다. 그녀는 ‘그곳’을 떠나려 한다. 훈자(Hunza)의 소녀 아리바(Ariba), 그녀와 나는 거기서 스쳐간다. 만년 빙하, 그 부스러기 얼음 조각이 봄볕에 녹아 미끄러 내리 듯. 잠시 있다가 자취없이 사라져 버리는 만남.

훈자는 파키스탄의 북쪽 꼭대기… 히말라야, 카라코룸, 힌두쿠시 세 산맥이 서로 닿을 듯 모이는 곳. 그 사이 황량한 허공이 훈자 계곡이다. 옛 실크로드의 한 갈래가 이 계곡을 따라 간다. 지금은 카라코룸 하이웨이, 중국의 자본과 기술로 포장된 2차선 도로가 되어있다.

아리바를 만난 곳은 카림아바드, 잃어버린 훈자 왕국의 도읍지이다. 1974년 파키스탄에 병합되기 전 훈자는 1000년을 버틴 독립 왕국. 발티트(Baltit) 성채로 오르는 언덕길에서 그녀를 만났다. 유럽인의 골상에 동양인의 살색, 아직 봄앓이에 눈 뜨지 않은 해 맑은 얼굴, 그 얼굴의 반의 반은 깊은 갈색 눈.

“사진 찍어 주세요” 떠듬한 영어로 그녀가 말한다. 굳이 나하고 같이 찍자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들도 부른다. 얼떨결에 아리바 가족 사진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사진기는 내 사진기. 그녀와 그녀의 동생들은 아직도 내 사진 저장고에 갇혀 있다.



아리바와의 두 번째 만남은 발티트에서 내려오는 길 노변 식당에서다. 갓 구운 난(Nan)을 먹고 있는 우리 일행을 보고 아리바가 온다. 자기 식구들이 먹는 훈자의 음식 한 덩어리를 멋쩍게 주고 간다. 한국의 호박범벅 비슷한 그녀의 선물을 나도 어정쩡하게 받는다.

알티트(Altit) 성채 앞 바위 위에서 아리바를 세 번째 만난다.

알티트와 발티트, 둘 다 훈자의 왕성이다. 알티트가 먼저다. 서기 11세기경 훈자 계곡에 들어온 선주민이 왕성을 세웠다. 당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훈자에 들어온 사람들은 백인 훈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알렉산더 대왕 군대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훈자 주민들 중에는 눈이 파란 백인들도 있다. 그러나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지금도 이 지방에서 쓰는 언어는 주위의 다른 말과 연관 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알티트의 두 면은 90도 각도의 절벽이다. 아래로 훈자 강이 큰 구렁이 몸통 만하게 보인다. 훈자의 왕 미르(Mir)는 반대자들을 왕궁에 초대한 후에 알티트에서 밀어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왕국은 분열한다. 14세기에 왕위를 두고 형과 동생이 싸운다. 형이 알티트를 버리고 옆 동네에 발티트를 세운다.

발티트 궁의 세력이 더 커서 동생을 죽이고 다시 한 나라로 남는다.

발티트에서 알티트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황톳길, 냇물도 있고, 다리도 있고… 1960년대 한국의 시골 길 같다.

알티트 성채 앞, 아리바가 반갑게 웃는다. 또 사진을 찍어 달랜다. 그녀의 손에 들어갈 수 없는 사진. 아리바는 왜 사진 찍히기를 원했을까?

그녀의 눈 속에 답이 보인다.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남들이 이상향 ‘샹그릴라'라고 찾아오는 이 곳 훈자 땅도 그녀에게는 속박이다. 아리바는 떠날 것이다. 60년 전에 나도 그랬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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