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무(無)에서 출발해 무로 돌아가'…브루클린뮤지엄서 개인전 여는 곽선경씨

마스킹테이프로 독창적인 드로잉

오는 3월 27일부터 브루클린뮤지엄에서 마스킹테이프로 대형 벽화를 선보일 곽선경씨는 화가의 전통적인 재료 세 가지를 거부했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붓과 결별을 선언한지 14년째, 그가 만끽해온 것은 미술가로서의 해방감이다. 이번 달초부터 조수 3명과 브루클린뮤지엄에서 마스킹테이프(☞ 페인트가 쓸데없이 다른 곳에 칠해지지 않도록 그 가장자리에 붙이는 보호 테이프)로 작업 중인 곽씨를 만났다.

마스킹테이프의 발=“그린다는 행위를 육체적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가리개 용도로 사용하던 마스킹테이프가 눈에 들어왔지요.”

숙명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곽씨는 한국에서 배운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뉴욕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뉴욕대학원에 진학해 물감과 붓 대신 철사로 공간 드로잉을 하고, 캔버스는 톱질해서 자른 후 펼쳤다. 2차원에서 탈피한 곽씨의 화두는 ‘몸으로 느끼는 그림’이었다. 그를 위해 퍼포먼스도 해봤다.



1995년 작업실에 버려져있던 마스킹테이프가 문득 새로워 보였다. 그길로 차이나타운에 가서 값싼 검정색 마스킹테이프를 사갖고 돌아와 빌딩 벽에서 계단, 난간, 소화전 위에 테이프를 찢어붙이며 홀로 ‘드로잉 퍼포먼스’를 했다.
“한참 하고 나니 손에서 잉크가 나오는 것 같더군요.”

그후로 곽씨에겐 모든 장소가 잠재적인 캔버스가 된다. 영혼을 담아서 나오는 손끝은 붓이, 붙임성이 강한 마스킹테이프는 물감이 됐다.

건축물은 유구하지만, 테이프는 일회성 소모품이다. 이 둘의 기묘한 교감으로 곽씨는 독창적인 드로잉이 탄생한 것이다.

동양적 기의 흐름=들쭉날쭉하고 정교한 검은 선들이 이어지는 곽씨의 마스킹테이프 드로잉은 크기 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

하얀 벽과 마룻바닥, 창문과 빌딩 벽은 춤추는 듯한 선(線)을 만나 교합하는 듯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선들은 때로 파도나 바람, 물줄기처럼 관람자를 압도하며, 나이테나 뿌리 혹은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적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예의 일필휘지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선들은 정중동의 선(禪)의 세계로 인도하게 된다. 관람자들은 스펙터클한 공간 드로잉 속을 거닐며 명상이나 유희를 할 수 있다.

그림의 기본인 선을 추구하는 곽씨의 작품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원초적인 소통을 가능케했다. 남녀노소 모두 체험할 수 보편적인 그림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생로병사의 미술=“작업 자체가 중노동이어요. 한 프로젝트 진행할 때마다 체력관리와 식이요법을 해야합니다. 작업이 끝날 때마다 지문이 없어지지요.”

마스킹테이프를 쓴지 14년째, 곽씨는 아직도 공사장의 인부처럼 일한다. 건물 바닥에서 벽, 천장, 때로는 유리창 안팎과 건물 외관까지 테이프로 감싸며 포옹하면서 순간순간 희열감을 느끼는 것이 보상이라고나 할까.

“공간에 처음 들어서면 공포감도 있지요. 미아가 된 기분이기도 하구요. 작업을 하는 동안엔 철저하게 마음을 비우고, 저와 마스킹테이프와 선의 합일(合一)을 추구합니다.”

일주일에서 때론 몇 달까지 시간·공간과 씨름하며 완성한 드로잉은 전시가 끝나면 곧 폐기처분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다.

“작품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입니다. 어차피 빈 공간에서 시작한 것이고, 수명이 끝나면 휴지가 되는 거지요. 우리 인생과도 같잖아요. 무(無)에서 시작해서 다시 무로 돌아가지만, 이전과는 다릅니다. 흔적이 남으니까요."

▷일정: 3월 27일∼7월 5일

▷장소: 브루클린뮤지엄(200 Eastern Parkway Brooklyn. www.brooklynmuseum.org)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