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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2020년의 첫 마음

새해가 밝았다.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되었다. 눈이 내린 하얀 설원이 앞에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미지의 설원을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을 것이다. 그 발자국은 나의 족적이 되는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간에 새로운 길을 가는 일은 설레는 일이면서도 조금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의 때에는 새로운 의욕이 필요하다.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높이의 의욕이 필요하다.

새해가 시작되는 이때에는 우리의 생각이 귤나무 가지에 노란 귤이 매달려있듯이 그 신선한 높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귤나무 가지에 매달린 귤들은 모두 다 높이가 다르다. 그러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지는 않다. 저마다 높이를 갖고 저마다 빛을 받으면서 노랗게 익어가면서 달콤함을 가득 채운다.

우리가 바라는 여럿의 일들도 귤나무에 귤 달려있듯이 했으면 한다. 낮은 단계의 계획도 있고, 높은 수준의 계획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서, 가끔은 흔들리겠지만, 귤의 알이 굵어지듯 계획한 일에 성취가 채워졌으면 한다. 어떤 의욕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채로. 어떤 전망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새해 해맞이를 하러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가고, 또 높은 산봉우리에 오른다. 거기서 우리는 일출의 장관을 만난다. 바다를 건너 산등성이를 넘어 오는 빛을 본다. 빛을 바라볼 적에, 해변과 골짜기와 들판과 마을에 쏟아지는 그 빛을 바라볼 적에 빛의 환함을 우리의 마음에도 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인심도 빛으로 채워 넉넉하게 하고, 빛의 언어를 사용하고, 빛의 표정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게 남은 빛을 가족에게 이웃에게 나눠주었으면 한다. 나눠줘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빛이다. 횃불의 불을 다른 이에게 옮겨도 내 횃불의 불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새해 아침이면 나는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에 부합하는 문장을 골라 생활의 지침으로 삼으려고 한다. 올해는 “작은 풀이여, 당신의 발걸음은 작지만 당신은 발아래에 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선택했다. 이 문장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구(詩句)이다. 타고르는 1910년에 출간한 시집 ‘기탄잘리’로 191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구는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 근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시구는 우리가 비록 유약한 풀에 불과할 수 있지만 우리의 배후에 큰 대지와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열반경’에서 “마치 소금이나 꿀이 어디에 섞이더라도 본성이 살아 있는 것처럼, 어떤 번뇌에 섞이더라도 밝은 자신의 성품, 즉 자성(自性)은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대지는 관용과 너그러움과 인내와 배려하는 마음의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우리 내면에 이처럼 대지가 있다고 여긴다면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의 닥침에도 스스로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성(城)처럼. 또한 이처럼 여긴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존재의 바탕에 대지가 있음을 믿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것을 알아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난초에 새로이 촉이 나듯이 새해를 맞아 갖게 되는 첫 마음을 가만히 가다듬어본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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