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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자존심 포기한 사람들

[LA중앙일보] 발행 2009/02/19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9/02/18 20:24

이종호/편집2팀장

롱텀케어라는 보험이 있다. 이는 사고나 질병으로 남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일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됐을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장기간호보험 또는 양로보험이라고도 불리는 데 주류 사회에선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노령 인구의 증가와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더 이상 책임질 수 없게 되어감에 따라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인 사회에서만은 아직도 발을 못 붙이고 있다고 한다. 주류 보험회사들도 한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나름대로 열심히 마케팅을 하고는 있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몇몇 한인들의 얘기만 들어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 것이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정부 혜택들을 못받는데 왜 비싼 보험료 내가며 일부러 그런 보험에 드느냐는 것이다.

평생 열심히 일하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냈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그렇다고 할 만큼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다.

그 뿐일까. 언젠가 병원에 다녀온 뒤 나중에 건강보험 회사에서 보내 온 진료 확인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특별한 검사나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진료 항목들이 들어 있어서 의아해 했었다.

최근 이슈가 됐던 한인 의사 부부의 거액 메디케어 사기 사건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도 않은 진료를 한 것처럼 꾸며 진료비를 과다 청구하려 했던 것이다.

남의 돈은 공돈 재주껏 타 쓰는 게 임자라는 의식이 뿌리 깊어서일까. 공짜라면 체면도 자존심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일까.이렇게 양심을 파는 부류들 중에 우리 한인들도 심심찮게 끼인다는 게 참담하고 부끄럽다.

돈과 관련하여 모름지기 경계해야 하는 마음이 두 가지 있다고 들었다. 가진 자라면 놀부근성을 가지지 못한 자라면 거지근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남보다 많이 가졌으면서도 움켜쥐기만 하고 풀어 낼 줄 모르는 마음이 놀부근성이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남의 것만 거저 먹으려는 마음은 거지근성이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도 온갖 챙길 것은 다 챙기려는 마음은 무엇일까. 재산은 자식들 명의로 다 돌려놓고 정작 본인은 최소한의 삶의 품위도 포기한 채 정부 혜택에만 기대어 살아가려는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일까.

이제는 우리도 한번 쯤 돌아볼 때가 됐다. 피땀 흘려 벌었다는 이유로 이민 생활이 힘겹고 어렵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놀부 근성 거지 근성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들여다 볼 때가 된 것이다.

한국인은 체면과 체통에 민감한 민족이다. 찬물 한 그릇을 마시고도 트림을 하고 이를 쑤셨던 자존심 강한 민족이다.

허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버려야 될 악습만은 아닌 것 같다. 쓸데 없는 허세라고만 치부하기엔 이 땅에 사는 우리의 모습들이 너무 기회주의적이고 비굴해 보여서이다.

이민 왔다고 미국이라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자존심까지 내던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부끄러운 모습까지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한국도 이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이자 세계 13위 경제 강국이라는 소릴 듣는다. 나와서 살지만 이제는 우리도 조국의 위상과 체통도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게 또한 이민자로 당당할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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