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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기생충’

[LA중앙일보] 발행 2020/01/1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1/09 17:35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할리우드에서는 세계 모든 영화를 상영하는 줄 알았다. 실상은 미국 영화 일색이었다. 유럽 등 다른 나라 영화는 소수 제한된 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외국 영화에 배타적이라는 뜻도 된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에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도 골든글로브 작품상에는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작품상 후보작은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라야 한다는 규정에 막혔다. 할리우드의 높은 벽과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는 부분이다.

봉준호 감독도 수상소감에서 언어 문제를 언급했다. “자막의 장벽,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휠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한국어로 영화를 제작해 세계 시장에 발표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언어 문제를 고백한 것이다.

영화는 시청각적 요소를 포함하는 종합예술이지만 메시지 전달의 기본은 각본이다. 음악, 미술, 무용 등 비언어적 예술과 달리 영화는 언어에 종속되는 장르다. 특정 언어권의 영화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으려면 상이한 언어 사이의 장벽을 넘게 하는 매개가 필요하다. 바로 번역이다.

지난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영미 문학계에서 노벨문화상 버금가는 문학상이다. 이때도 번역의 문제가 거론됐다. 원작이 갖는 언어적 감성을 제대로 표현한 번역 없이는 수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를 공동 수상한다.

미국작가조합(WGA)은 지난 6일 ‘기생충’을 각본상 후보로 발표했다. WGA는 동부와 서부에 작가조합을 운영하면서 매년 영화, TV, 라디오 작품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대중성은 떨어져도 전문 작가 단체에서 주는 상이라 권위는 절대적이다.

'기생충’의 큰 줄거리는 사회 양극화 현상과 계층간의 갈등이지만 세세한 묘사는 번역으로 원어의 감성과 어감을 살리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영어자막 영화를 본 외국인들의 공감대가 컸다고 한다. 평론가와 기자들로부터도 번역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번역했다. 그는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 기자를 거쳐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생충'이 격찬을 받은 이유는 작품성에 있지,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어 영화’의 특수성과 번역의 한계가 세계화의 걸림돌이었던 영화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번역은 소스언어(Sauce Language)의 말 또는 글을 타겟언어(Target Language)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상응하는 의미로 치환하지만 100% 완벽할 수는 없다. 원어의 뜻을 정확하게 구현한 번역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번역을 시도하는 자체가 ‘반역’이라는 말도 있다.

번역 과정에서 두 언어의 형태와 의미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여기에 번역가의 문학적 소양과 두 언어권의 문화적 경험이 합쳐져야 제대로 된 번역이 이뤄진다. 전자가 기술의 분야라면 후자는 결국 예술의 영역에 귀속된다.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기생충’은 자막의 장벽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정표를 세웠다.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영어'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독선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다. 이제 오스카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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