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9.0°

2020.06.06(Sat)

내가 체험한 신앙의 모델들 2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 사회학 박사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 사회학 박사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12 13:11

2. ‘우리들의 아버지’ 옥호열선교사

1953년 6월 18일 이승만대통령이 거제도포로수용소 반공포로들을 석방했다. 반공포로란 북한군 포로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가지않고 남한 자유의 땅에 남아있기를 원했던 포로들을 말한다. 당시 거제도포로수용소에는 8여만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3만여명의 반공포로가 있었다. 이대통령의 선언이 선포되자마자 한국군은 포로수용소의 철조망을 끊었으며 2만 7천여명의 반공포로들이 풀려나갔다.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선교사들의 복음을 받아드려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2천여명의 포로들도 함께 풀려났다. 100여명의 기독교 포로들이 석방 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이승만대통령은 당시 포로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던 미군 당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이로인해 북한과 유엔군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던 휴전협정교섭은 완전히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2016년 4월 20일 반공포로로 목사가 된 분 가운데 한분인 현순호목사님이 8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현목사님은 1969년 미국에 오셔서 이민목회와 학위공부를 동시에 하면서 피츠버그신학교과 메코멕신학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하나장로교회에서 20여년동안 담임목사로 섬기시다가 은퇴 후 캘리포니어 산호세지역으로 이주, 은퇴하신분들의 선교모임인 실리콘벨리선교회 회장으로 오랜동안 섬기셨다. 그동안 병으로 또는 노환으로 많은 반공포로 목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미국과 한국에 약 20여명의 반공포로 목사들이 생존해 계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섬기고 있는 메릴랜드 엘리콧시티 벧엘교회를 함께 섬기고 계시는 신창훈장로님이 현순호목사님과 함께 포로생활을 했으며 석방 직후 옥호열선교사의 도움으로 신학교를 졸업한 분이다.

나는 현순호목사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내가 1969년 피츠버그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현목사님이 신학공부를 하면서 당시 이지역에서 유일한 한인교회인 피츠버그한인교회를 담임하셨다. 너무나 기적같은 두번째 만남이었다. 내가 현목사님을 처음 만난것은 1964년 목사님이 보성여고 교목으로 계실 때 였다. 목사님은 당시 한국반공포로기독신우회 총무를 맡고 계셨으며 나는 대한일보 사회부 기자로 매주 토요일에 주말 특집으로 ‘판문점’을 연재하고 있었다. ‘판문점’은 6.25전쟁비화가운데 휴전협정과정과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얽힌 비화들을 관계자료와 관계인들 인터뷰을 통해 2년동안 진행된 연재물이다. 당시 신우회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정도 옥호열선교사을 만나고 있었다. 나도 현목사님을 통해 옥선교님을 소개받았다. 옥선교사님은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고있는 비화들을 너무 상세하게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서울 종로 5가 북장로교선교부에 계신 옥호열(미국명 Harold Voelkel)선교사님을 1년동안 거의 매주 만났다. 나를 처음 만난 옥선교사님은 강한 경북 안동사투리로 사무실 벽에 걸린 100여명의 사진들을 소개해 주었다. 옥선교사님은 1929년 30세 나이로 장로교 선교사로 안동에 오셨으며 6.25전쟁 당시 군목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국에서 40여년 복음을 전하시다가 은퇴하신 후 1975년 미국에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옥선교사님을 통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반공포로목사님들이었다. 반공포로목사님들은 옥선교사님을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옥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포로들은 4천여명에 이르며 1952년 부활절에 6백여명이 옥선교사로부터 집단으로 세례를 받았다.

옥선교사님은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손안론(미국명 W.L. Swallen) 선교사의 따님과 결혼직후 한국선교사로 오셨다. 한경직목사님이 동기 동창이다. 안동에서 첫 해에 첫 아들을 장질부사로 잃는 아품을 겪었다. 아들은 지금 안동 경안고등학교 선교사묘역에 다른 선교사님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옥선교사님은 1.4후퇴 때 함흥에서 미군을 통해 3천여명의 피난민들을 피난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활을 했다. 이를 ‘함흥철수작전’이라고 부른다. 나는 미국에 오기전인 1968년 옥선교사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다. 은퇴하여 미국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의 은인인 ‘우리들의 아버지’ 옥선교사님에게 한국정부가 무엇이가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문사를 통해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청와대에서 이를 받아드려 옥선교사님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옥목사님은 훈장수여일 1주일 전에 “훈장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관련기사 허종욱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조앤 박 재정전문가

조앤 박 재정전문가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