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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이 세 아들에게 남긴 격투비급

[조인스] 기사입력 2009/02/23 09:07

선친에게서 배운 싸움 기술 담은 책 내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의 세 아들이 아버지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막내 광화씨, 첫째 광범씨, 둘째 광수씨. [조용철 기자]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의 세 아들이 아버지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막내 광화씨, 첫째 광범씨, 둘째 광수씨. [조용철 기자]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본명 최영의, 1923∼94).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로, 우리에겐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 눕히고 일본의 가라테 고수를 차례로 격파했던 ‘도장 깨기’로 기억되는 전설의 이름이다.

그의 세 아들이 무술인 아버지의 정신을 잇고자 최근 책 한 권을 펴냈다. 실전격투기 교본 『최강의 나를 만드는 실전 격투기』(삼호미디어)다. 최배달의 세 아들 광범(36·의사), 광수(34·회사원), 광화(29·커피 바리스타)씨를 21일 서울 대방동 집에서 만났다. 작은 마당이 있는 2층 집엔 어머니 홍순호(61)씨와 장남 광범씨 부부, 그리고 막내 광화씨가 살고 있었다. 책을 낸 경위부터 들었다.

“실전 무술을 추구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실전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싸움 기술을 정리했습니다. 마당에서 아버지와 샌드백을 치며 나눴던 무술에 관한 얘기, 목욕탕에서 들었던 여러 일화를 엮은 것입니다. 그때 일기장에 받아 적었던 걸 이번에 책으로 묶은 것이지요.”

장남 광범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막내 광화씨에게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영화 ‘넘버 3’가 히트하고 영화에서 “예전에 말이야 최영의라는 분이 계셨어”로 시작하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고 나서야 친구들이 그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예순에 저를 낳으셨어요. 손자에게 인생을 가르치듯이 아버지는 저에게 ‘남자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최배달은 만년에 일본에서 한국인 부인을 만났다. 73년 한국에 들어왔고, 지금의 대방동에 집을 얻었다. 하지만 말년에도 그의 무대는 여전히 일본이었다. 대방동 집에는 한 달에 한 번쯤 들렀을 뿐이다.

세 아들 모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피를 속일 수는 없었다. 전설의 파이터의 아들인 만큼 삼 형제는 모두 강인한 체력과 무술가로서의 자질을 타고 났다. 광범씨는 중1 때부터 합기도를 연마했고, 광수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합기도·태권도·복싱 등을 섭렵하며 대방동 일대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광화씨도 아버지가 ‘영원한 스승’으로 삼은 미야모토 무사시를 흠모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검도를 연마했다. 최배달의 세 아들은 하나같이 학교에서 무술로 이름을 날렸다. 큰 싸움을 벌여 정학 처분을 받은 경험도 세 아들 모두 똑같다.

아버지로부터 무술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던 광범씨의 일화 한 토막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살 많은 유급생 셋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최배달 아들이 싸움을 한다’면서 애들이 몰려들었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맨 앞의 아이에게 돌려차기를 날렸죠. 걔가 크게 다쳤어요. 정학 처분을 받고 왔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네가 그 친구보다 세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 그걸 알고도 상대를 큰 기술로 제압하려 한 게 너의 가장 큰 잘못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술에 빗대 훈육했다. 운동만 하던 광범씨가 의대에 가겠다며 재수를 할 때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며 자신이 산 속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친 뒤 일본의 고수 30인과 대결을 벌였던 얘기를 자주 들려줬다. 그 가르침을 새긴 광범씨는 삼수 끝에 관동대 의대에 진학했다.

최배달의 세 아들은 세파를 많이 타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이었다. 광범씨는 의대를 졸업한 뒤 지금 서울병무청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젊었을 적 용모를 빼닮은 광수씨는 대학에서 스포츠 의학을 전공한 뒤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막내 광화씨는 외식산업학부에서 커피 바리스타 과정을 마친 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땅 300평에 빌라를 짓고 그 임대료로 저희를 키웠어요.” 자택 옆 3층짜리 ‘의호빌라 A·B동’이 삼 형제 교육비의 밑천이다. ‘의호’라는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한 자씩 따와서 붙였다.

노년의 아버지는 세 아들을 앉혀놓고 “무술이란 기술적인 것 말고도 영양과 이론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 장남은 의사가 됐고, 둘째는 격투기 선수 생활을 보냈고, 막내는 음식을 전공하고 있다. 아버지가 생전에 이야기했던 실전 무술 철학이 세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실전 무술을 계승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다.

김영주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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