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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영화 ‘기생충’이 불편한 이유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도 잘 만들지만 말도 잘한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을 보자.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외국어영화상 수상자다운 소감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공통의 언어 즉 영화를 통해 보편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이번에 골든글로브에 이어 곧 있을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상 수상도 점쳐지고 있다. ‘기생충’에 담긴 그 무엇이 글로벌한 공감을 얻는 것일까?

우선 ‘기생충’이 다루는 소재가 보편적이다.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아마 사랑 이야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많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각고의 노력을 거쳐 꿈을 이루는 성공 스토리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 부와 권력을 더 많이 얻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재미와 관심을 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칸과 골든글로브 무대를 석권할 순 없을 것이다. ‘기생충’은 그런 뻔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품의 예술적 성취는 관객의 상식과 때로 부딪친다. 익숙한 기대와 충돌하며 불편함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생명력은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는 흔히 계급 갈등을 연상시킨다. 대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편싸움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기생충’은 바로 그 대목을 비틀었다. 계급 간 편싸움이 아닌 계급 내 이권 다툼을 조명했다고나 할까. 편싸움의 이념이 해체되고 나니 선과 악의 개념도 흔들리게 된다. 영화에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가 모호하다.

편싸움은 대개 흑백논리로 전개된다. 우리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어야 한다. 선에다 악의 누명을 씌우고, 악을 선으로 둔갑시키는 일은 예사로 벌어진다. 거짓말은 일상이 된다.

‘기생충’에서 선악이 혼재돼 있다 보니 누가 진짜 기생충인지 헷갈린다. 모두가 다 기생충이고 기생의 정도 차이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 원래 기생충이었던 2인조 ‘부부 사기단’과 그 자리의 꿀물을 노리며 새로 진입한 4인조 ‘가족 사기단’의 이권 다툼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보인다. 이런 다툼을 모두 계급 갈등이란 하나의 잣대로 얼버무릴 순 없을 것 같다. 지레짐작으로 진영 간 패싸움의 한쪽을 편들어 주리라 예상하고 입장한 관객이라면 이 대목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토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생충’은 감독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일종의 우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상의 이야기가 더 사실 같기도 하다. 우리 현실에서 선악을 칼로 두부 자르듯 분명하게 양분할 수 있을까?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마치 선과 악이 둘로 나뉜 것처럼 자기만 옳다며 아웅다웅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대목이 상상의 허구이면서도 현실과 호흡의 끈을 놓지 않는 ‘기생충’의 예술적 포인트로 보인다.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한 공감을 얻어 가는 배경에는 그런 점도 작용하는 듯하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공감을 얻고 있을까. 우리 사회엔 언어의 장벽보다 더 높은 장벽이 놓여 있다. 진영과 패싸움의 장벽이다.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자기편끼리만 통하는 은어가 따로 있는 듯하다. 세종대왕이 다시 나와 새로운 훈민정음을 창제해야 할까. 자기만 절대 옳다는 독선적 태도가 장벽의 실체로 보인다. 즐거운 소식이 밖에서만 아니라 안에서도 들려왔으면 좋겠다.


배영대 /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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