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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다시 시작한 산행의 기쁨

남가주에 겨울이 오고 비가 오면 먼 산봉우리는 하얀 눈으로 덮인다. 조금 높은 곳에서나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이는 그 모습은 산을 즐겨 찾는 등산객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사철 온화하고 눈 구경하기 어려운 남가주에서 한 시간 남짓 가면 눈 쌓인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좋아하던 등산을 그만둔 게 재작년 5월이었으니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 등산을 좀 힘들게 한 게 화근이었다. 8000피트가 넘는 두 개 산을 하루에 다 오르고 내리는 좀 버거운 산행을 끝낸 후, 왼쪽 고관절 쪽이 조금씩 아파서 덜컥 겁이 났다. 무리하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일단은 등산을 쉬기로 했다.

몇 개월을 쉬어도 아픈 건 더 심해지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았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픈 것은 아니어서 그냥 살기로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산에 못 가는 심사는 답답하기만 했다. 산악회 사이트에서 등산 뒷얘기와 사진이나 보며 대리만족을 해야 했다.



그런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된 것인지 산에 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도 거의 사라질 즈음, 1년에 한 번 검사 차 방문한 주치의에게 얘기해서 X레이 촬영을 해보니 이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X레이에서 이상이 있을 정도면 내가 느끼는 통증이 컸을 것이고 골프 같은 운동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 4개월을 같이 살던 손녀도 지난 연말 자기네 보금자리로 떠나고 마음이 허전한 차에 다시 산에 가보기로 했다.

다시 등산을 가는 날이다. 그것도 눈이 많이 쌓인 설산이다. 너무 오래 쉬어 제대로 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아이스 하우스 캐년 초입에 들어서니 벌써 물소리가 우렁차다. LA 근처에서 이런 계곡물 소리를 들어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곳을 한인들은 ‘LA의 북한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마일도 못 가 크램폰(아이젠)을 차야 할 정도로 눈이 쌓여 미끄럽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은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순백의 눈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별세계 모습이다. 2시간 남짓이면 올라갈 목표지점인 새들까지가 눈길이고 오래 쉬어 세 시간이나 걸렸다. 밑에서는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이곳은 바람이 엄청 세다. 역시 산의 날씨는 예측이 어렵고 변화무쌍하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와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다.

그 산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돌아 온 탕자를 아무 조건 없이 반갑게 맞아 주는 아버지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다 다시 돌아와도 모든 것을 감싸고 품어주며 받아주는 절대자 그분처럼 언제나 같은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송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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