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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아내가 받은 한밤중의 괴전화 "너만 신영균 데리고 사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20 07:13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48)
<19> 가정생활 위협한 극성팬들

한창때는 하루에 팬레터 수십 통
“사랑한다” 혈서 담긴 상자에 놀라
넥타이·손수건 뺏기는 건 다반사
아이들 납치 협박에 집도 옮겨가



1960년대 중반 인기가 한창일 때 수많은 지방 팬들과 함께한 배우 신영균(앞쪽 가운데). 왼쪽에 김진규, 오른쪽에 허장강·신성일이 보인다.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요즘처럼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1960~70년대, 영화는 많은 사람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당시 극장가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덕분에 나는 배우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집으로 팬레터가 날아들었고, 아무리 바빠도 되도록 답장을 하려 애썼다.

립스틱 자국 선명한 외국인 편지 받기도








팬레터 때문에 아내에게 오해를 받았던 기억도 난다. 촬영 중 잠시 쉬는 시간에 한 외국인 여성이 기념사진을 찍자며 다가왔다. 사진을 찍은 다음 날, 또 촬영장 근처로 와서 수줍게 영어로 쓴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집에 가서 보려고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뒀는데 아내가 그걸 발견하곤 불같이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당신을 사랑한다”는 내용과 함께 키스 마크를 찍어 보낸 모양이었다. “여보, 이 편지 뭐예요? 대체 어떤 사이기에 여자가 편지에 자기 입술 자국까지 남겨요?” “아, 외국인이라 거침이 없는 모양인데 그냥 팬이라면서 준 편지예요. 이상한 사이는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팬클럽 개념도 없던 시절, 팬 중 누군가 대표로 편지를 보내 만남을 주선하면 그게 일종의 팬 미팅이 됐다. 그들을 촬영장으로 초대해서 얘기하고 기념사진 찍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60년대 후반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신영균.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가끔 무대 인사를 가면 구름같이 모여드는 팬들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했다. 배우들이 지나갈 때 손을 뻗어 만지려 하다 보니 옷이 뜯기거나 넥타이·손수건 등을 뺏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다.

지나친 팬심은 가끔 도를 넘기도 했다. 내 인기가 하늘을 찔렀을 때, 한밤중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야 이X아, 신영균을 너 혼자 데리고 사냐?” 발신번호 추적 기능도 없던 시절, 아내는 속수무책으로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스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전화뿐 아니라 집 앞까지 찾아와 소동을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촬영장에 불려 다닐 때 아내 혼자 이런 일을 감당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엽기적인 혈서 팬레터도 잊을 수 없다. 아내가 “배우의 아내로서 힘들었던 게 많았겠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꺼내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서울 쌍림동에 살 때였는데, 새벽 기도를 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집 앞에 놓여있던 작은 상자를 아내에게 건넸다. “애미야 옜다, 영균이한테 온 건가 보다.” “어머님 이것 좀 보세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혈서를 써서 보냈어요.” 누가 보낸 편지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뜨거운 팬심을 드러내고 싶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충분히 공포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 무렵 아동 유괴사건이 빈번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과 딸을 납치하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걸려오자 아내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우리는 결국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분이 아이들 등·하교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스타와 팬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늘 필요한 것 같다. 팬이 있기에 스타도 존재할 수 있다지만 본인이나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선행이라는 연결 고리로 스타와 팬이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는 최근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팬들에게 “앞으로도 우리 좋은 건 같이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유의 팬클럽 회원들이 중증 장애인을 위한 연말 난방비로 2000만원을 모아 후원한 이후였다. 배우 이승기도 최근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에 환자 치료비로 1억원을 쾌척했는데, 그의 팬들도 1000만원을 모아 같은 곳에 기부했다고 들었다. 내게도 비슷한 사연으로 연결된 팬들이 더러 있다.

60년 넘게 인연 이어온 팬들에게 감사




2012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 특별 상영을 마친 뒤에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신영균.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분은 올해 아흔여섯인 고금순 여사가 아닐까 싶다. 그는 5년 전부터 아들 정장덕씨와 함께 해마다 연극·영화인 자녀를 위한 장학금 30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서울 신당동에서 야채가게를 하며 모아 온 돈이라고 한다. 올 일흔인 아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수집했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에서 매년 18개 연극·영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장학금 지급 대상자 20명을 선정한다. 10년 이상 연극·영화계에 종사한 사람의 자녀 중 대학생은 B학점 이상, 고등학생은 5등급 이상이어야 신청할 수 있다. 스무 명 중 한 명에게 고금순 모자가 직접 장학금을 주는 셈이다. 고 여사는 나를 볼 때마다 “잘 있었지요? 건강해야 해요”라며 덕담을 건넨다. 스타와 팬의 60년 우정은 이렇게 선행을 통해 더 끈끈해지고 있다.

장학사업도 재단을 설립하면서 시작했으니 올해로 10년째가 된다. 국내 첫 영화관인 단성사 빌딩을 인수해 영화역사관으로 재탄생시킨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도 앞으로 장학금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앞으로도 장학 사업이 계속돼 더 많은 연극·영화인 자녀가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딴따라’라는 설움을 극복해가며 꿈을 좇느라 가정에 소홀했을지 모르는 수많은 배우와 그 가정에 조금이나마 격려가 됐으면 한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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