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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쿠바의 한인들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나라, 쿠바. 그럼에도 가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아마도 헤밍웨이 때문일 것이다. ‘노인과 바다'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는 쿠바에 살면 나도 명작을 쓸 수 있을까?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UCLA 대학 안에 있는 로이스홀은 또 어떻게 찾아야 할지 출발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선다는 건 생각부터 땀에 손을 쥐게 한다.

“나는 임은조입니다. 아바나에서 삽니다”라는 육성으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는 생소한 거리를 운전하듯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100여 년 전 조선 땅을 떠나야 했던 한인들이 발을 내딛었던 애니깽 농장, 그들은 결국 쿠바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불운의 이민의 역사는 혼혈이라는 또 다른 무늬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변호사였던 한 청년의 배낭여행은 임은조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만들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멘 청년이 쿠바에 도착해 하필 그가 탔던 택시운전사가 한인4세였고 임은조가 할아버지이고 ‘쿠바의 도산 안창호’였던 증조부 임천택을 둔 페트리샤 임이라니. 카스트로와 대학 동기였던 임은조, 그 인연으로 체 게바라와 더불어 혁명의 전선에 섰던 어찌할 수 없던 운명이 한인 청년의 가슴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노벨문학상을 탔던 헤밍웨이의 생전의 유적지에만 관심이 있던 나와 달리 전후석이라는 청년의 눈에 비친 쿠바는 한인들 뿐이었다. 오랜 공산주의 국가 체제로 인해 국가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나라에서 한인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은 나라 쿠바, 북한과 수교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없었던 한인들의 모습은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헤로니모’는 쿠바에 사는 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이고 한국인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은 미국에 사는 한인 후손들의 이야기였다. 푸른 눈, 갈색 머리카락을 하고서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 노래를 부르는 후손들. 그 다큐멘터리가 한인타운 복판이 아닌 대학 안에 있는 조그만 강의실에서 외국 학생들 앞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

100년이라는 이민 역사가 드리워진 한 가족의 기록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을 그의 선택에 대해 현실은 소문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영화 시작 전에 감독이 내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영화 ‘헤로니모’가 별로 관객이 없었노라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100년 전에 해외에 이주한 한인들에겐 관심이 없다. 게다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한인들이라면 더 관심 밖이다. 미국 내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간직하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놓는 일이다. 선대의 독립운동을 앞세운 모임이 전부가 아님을 전후석 감독이 몸소 보여준 것이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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