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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후 몸 긁적긁적, 욕설 내뱉고···망가진 배종옥 10년 소원 풀었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24 17:03

연극 '꽃의 비밀'에서 망가지는 역할



배우 배종옥은 공연 의상을 그대로 입고 인터뷰를 했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이런단다. “배우 배종옥이 나온다고 해서 왔는데, 누가 배종옥이었어?” 배종옥이 전해준 얘기다. 지난달 개막한 연극 ‘꽃의 비밀’에 출연 중인 그는 ‘절대 배종옥이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선다.


첫 등장부터 주름진 꽃무늬 치마, 시골풍의 블라우스, 오래된 것 같은 담요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온다. 양볼은 너무하다 싶게 붉고 머리는 부스스한데 몸은 중심을 못잡고 휘청거린다. 매일 술에 취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아줌마다. 그런데 목소리는 영락없이 아저씨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굵고 성격도 남자 같은 이탈리아 북부 시골의 여성, ‘자스민’ 역할이다.


배종옥은 작정하고 망가진다. 중반부터는 남장을 하고 나온다. 같이 나오는 여배우들도 남장을 하지만, 그의 남장은 충격적이다. 얼굴에는 되는대로 먹칠한 것처럼 넓게 수염을 그렸고 머리는 쥐어뜯긴 듯이 짧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객석에서 대폭소가 나온다. 자스민은 사타구니를 벅벅 긁고,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어색하게 욕설을 해댄다.


배종옥은 1985년 TV 드라마로 데뷔한 후 진지하고, 깊이 있고, 지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배종옥의 출연작은 정통 드라마였다. 2009년엔 고려대 언론학대학원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게시판 반응과 제작구성원의 상호작용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꽃의 비밀’은 배종옥의 첫 슬랩스틱이다. 작ㆍ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에게 조르고 졸라 2016년 자스민 역을 맡았던 그는 3년 만에 다시 출연했다. 꼭 출연하고 싶어하는 그의 스케줄에 공연 일정을 맞췄을 정도다. 연극 흥행을 위해 방송사에 직접 연락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각별히 여긴다.


모든 게 코미디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코미디 하고 싶다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 아무도 제의를 안 했어요.” 관객이 배종옥을 못 알아볼 정도로 자신을 버리는 코미디를 그는 왜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Q : 연극에선 우리가 생각했던 배우 배종옥의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A :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해왔던 거로부터 다른 역할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그게 코미디였어요. 근데 코미디 작품이 사실 많지 않고,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은 더 없었어요. 제가 10년 전부터 얘기를 했어요. 코미디 작품 좀 찾아달라고.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의 배종옥. [사진 중앙포토]






Q : 그중에서도 왜 코미디인가요.
A : 사람들은 배종옥은 이런 역할 안 하겠다고 규정짓는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자신은 그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요.


Q : 데뷔 이후로 늘 그랬나요.
A : 젊었을 때는 그랬다고 볼 수 없죠. 그때는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역할에 집착했어요. 그게 내 길이라 생각했고.


Q :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 쉰살 즈음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을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나도 유쾌하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요. 30대 후반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라는 시트콤을 했는데 그때는 잘 즐기지를 못했어요. 주는 대로만 만족해서 하고. 그게 지금 참 아쉬워요.


Q : 그 후로는 코미디 작품 제의도 없었나요.
A : 네. 진지한 작품 제의만 들어오는 게 문제에요. 제가 방송에서든 인터뷰에서든 코미디 하고 싶다고 10년 동안 얘기했거든요. 근데 안 들어와요!


Q : 그간 이미지 때문이겠죠.
A :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미지를 스스로 찾지 못해요. 우연히 젊은 감독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를 하면 좋을 것 같다길래 ‘어떤 캐릭터가 좋겠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뭔가 그로테스크하고, 어딘지 강렬한 느낌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야! 나는 코미디 하고 싶어!’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조차 아무도 이해를 못 해요. 아,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이미지를 자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그래서 ‘꽃의 비밀’도 찾았고요.



스스로 아주 여성스럽다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남자같다 여기는 자스민 역할의 배종옥 배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이번 작품에서는 아주 많이 망가집니다. 여배우로서 망설이진 않았나요.
A : 망가지긴요? 뭐가 망가지는 거죠?


Q : 분장도 의상도 ‘예쁘지’ 않고, 욕까지 해야 하는 것이요?
A : 저는 욕하는 거 너무 재미있어요. 욕이 잘 안 나와서 무조건 계속 욕해보면서 굉장히 연습했지만 망가진다는 생각은 별반 안 해본 것 같아요.


Q : 지금까지 만들어온 이미지에 대한 영향은 걱정 안 됐나요.
A : 그럴까요? 이 작품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잘하면 되죠. 그렇지 못하면 경력에 위기가 오겠지만요.


Q : 지금까지 해온 연기와 전혀 달라서 쉽지 않았을 텐데요.
A : 장진 감독도 내가 이 역할 하고 싶다고 하니 처음엔 ‘에이, 막 남자 목소리 내야 되는데 그건 안될걸’했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역할을 제의했는데 제가 싫다고 했어요. 바꾸려니 고통스러웠던 건 맞아요. 나를 버리고 깨보는 작업이 필요했죠. 그래도 계속 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2016년에 첫 공연할 때 저는 웃음을 참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전혀 웃음이 안 나요.



연극 '꽃의 비밀'에서 남장을 한 후의 배종옥(맨 오른쪽). 네 여인은 남편의 보험금을 위해 남장을 한다. [사진 파크컴퍼니]







Q : 너무 웃겨서 관객들이 깔깔대는 동안 배우들은 정지해있는 장면이 많죠. 웃음을 참는 게 아니고 웃음이 안 난다고요?
A : 그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저는 제가 웃어서 코미디가 안 됐거든요. 예를 들어 첫 공연에서는 ‘술 처먹고 니 마누라 패지나 마라 xx야’하고 외치는 부분에서 너무 웃음이 나서 연기를 못하고 시선도 배우에게 못 주고 대사만 쳤어요. 근데 두 번째 공연부터는 웃음이 안 나요. 안 웃기니까 제가 대사를 쫙 치고 사람들이 웃겨서 반 죽거든요.


Q : 왜 안 웃기게 됐을까요.
A :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싫증을 잘 내서 같은 작품을 두 번씩 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이건 제가 워낙 좋아하는 공연이라 다시 했더니 집중하는 훈련이 된 거겠죠. 웃지 않고.


Q :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머 블랙홀’ ‘농담 종결자’로 나왔어요. 웃기는 거, 재미있는 거 좋아하시나요.
A : 제가 좀 농담을 못 받아주는 면은 있죠. 재미있지 않은 사람 굉장히 지루해해요. 근데 저는 재미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써요. 삶을 도전적으로 사는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요. 주어진 것만 하지 않고 도전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그게 재미있다는 단어의 뜻인 것 같아요.


Q : 앞으로 연극 출연은요.
A : 3월 1일 '꽃의 비밀'이 끝나면 당분간은 쉬고 싶어요. 지난해에 너무 무리했어요. 연극도 드라마도 좀 쉬고 여유를 가지고 싶어요.


Q : 코미디 제의가 온다면요.
A : 환영이죠. 대환영.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긴 요소들이 부각되는 캐릭터를 원해요. 근데 여기 기사에 쓰셔도 코미디 제의는 안 올걸요? 10년 내내 얘기했는데 그게 안 와요. 영화ㆍ드라마에서도 제 마음에만 드는 캐릭터라면 더 망가질 수도 있다고 널리 알려주세요. 제발!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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