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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스트레스’는 저항성 키워 수명 늘린다

김은기 / 인하대 교수
김은기 / 인하대 교수

[LA중앙일보] 발행 2020/01/27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20/01/25 13:22

어릴 적 운동회 달리기 전 긴장감 등
특정 DNA에 붙은 꼬리표는 오래가

스트레스는 독이지만 소량일 땐 약
벌침 속 독성분이 면역에 ‘잽’ 날려

체온 떨어지면 갈색지방 태워 건강
개인맞춤형 운동도 저항성 높여줘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만에 사망하자'는 뜻의 건강장수를 기원하는 건배사다. 90세를 훌쩍 넘기고도 건장한 어르신들이 있는 집안은 자식들도 오래 산다. 장수집안이 따로 있을까. 있다. 가족력, 즉 DNA가 장수 여부를 10~25% 결정한다. 나머지는 환경이다. 특히 스트레스는 수명과 직결된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게 오래간다면 그만큼 수명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건강에 나쁘기만 할까. 초등학교 운동회 시절, 달리기 출발선에 선 아이들의 ‘도전’ 스트레스는 이후 수명을 줄일까 늘일까.

최근 동물 연구는 어릴 적 ‘잽’ 정도의 ‘착한’ 스트레스는 이후 수명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다가 그 효과는 DNA에 ‘꼬리표’로 각인되어 오래간다. 스트레스에 대한 맷집이 커져서 웬만한 일에도 끄떡없이 장수한다는 거다(2019, 네이처 논문). 맷집을 늘리는 생활 속 비법은 무얼까? 운동이다. ‘착한’ 스트레스를 과학이 들여다보고 있다.

낮은 스트레스 받은 선충, 수명 1.7배 늘어

2019년 미시간대학 연구진은 선충(1㎜ 작은 벌레)을 가지고 장수연구를 하고 있었다. 연구진들은 선충들이 초기 스트레스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는지 시험했다. 막 태어난 선충들에게 스트레스 물질농도를 달리 주었다. 그러자 낮은 스트레스를 받은 놈들의 수명이 1.7배 늘어났다. 사람이라면 수명이 83세에서 141세로 늘어난 셈이다. 반면 스트레스가 너무 높으면 수명이 줄었다. 즉 어릴 적 ‘약한’ 스트레스가 이후 수명을 늘린 거다.

연구진은 선충 DNA 변화를 들여다보았다. 약한 스트레스가 특정 DNA에 꼬리표(메틸기)를 붙였다. 덕분에 강한 스트레스가 와도 나쁜 영향을 덜 받는 ‘저항성’이 생긴 거다. 한번 붙은 꼬리표는 오래간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단, 고생이 너무 강하면 역효과다.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잽’ 정도 스트레스가 약이 되는 셈이다. 학자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착한 스트레스(Eustress)’라고 이름 붙였다. 스트레스는 원래 독 이다. 그런데 ‘소량 독은 약이다’라는 호르메시스(Hormesis)이론이 스트레스에서도 증명된 셈이다. 대표적 호르메시스 현상은 벌침주사다.

벌에 쏘이면 붓고 가렵다. 벌침 속에는 다양한 독들이 들어 있다. 세포벽을 녹이고 적혈구를 파괴한다. 벌에 쏘인 침입자 곤충이 죽는 이유다. 말벌에게 공격당하면 성인도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벌을 한 놈 한 놈 집어서 사람 피부에 일부러 침을 쏘인다. 소위 ‘봉침’요법이다. 당연히 붓고 가렵다. 그런데 신기하게 통증이 낫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벌침 속 독성분이 면역에 ‘잽’을 날린 거다. 면역세포들이 몰려온다. 혈관이 넓어져서 벌겋게 붓는다. 덕분에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면역세포들이 쓰레기들을 치운다. 하지만 독은 독이다. 봉침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에는 벌침 성분 중에서 위험 물질을 제거하고 유용한 성분만으로 주사제로 만들어 사용한다.

이런 벌침요법은 기원전 2500년 이집트에도 기록이 있다. 옛사람들은 소량의 독이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예 독을 ‘마신’ 겁 없는 왕도 있었다. 그는 죽었을까? 아니다. 살았다. 그것도 아주 오래 살았다.

기원전 120년, 터키 남부지방을 다스리던 미트리다테 왕이 갑자기 사망했다. 독살이었다. 왕비가 의심스러웠지만 증거가 없었다. 며칠 지나서 두 아들이 복통을 일으켰다. 큰 아들은 덜컥 겁이 났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산속에 숨어 살았다. 다시 왕이 된다 해도 독살 위협은 계속 있을 것이다. 큰아들은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 독에 대한 저항성을 키우자. 독을 조금씩 먹어보자’ 산속에서 독초 54종을 모았다. 즙을 냈다. 아주 조금씩 매일 먹었다. 그렇게 7년을 지냈다.

기회가 왔다. 큰아들은 예전 신하들과 내통하여 왕비와 둘째 아들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역사기록이다. 그 뒤로 실제 왕을 독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가 60년을 살았다는 거다. 당시 평균수명이 25세다. 그 왕은 왜 장수했을까. 과학자들은 산속에서 매일 먹은 소량 독 물질이 어떤 식으로든 왕 세포들을 자극해서 수명을 연장시켰을 거라 추측한다.

실제로 이 방법은 유럽 왕가 사이에 '비법’으로 전수되어 이후 1900년간 사용되었다. 비법이름은 ‘해독제(antidote)’였다. 이름이 조금 잘못됐다. 독을 먹은 다음 해독하는 것이 아니고 미리 먹어서 독에 대비하는 것이니 방독(防毒)제가 맞다. 왕들이 먹은 소량 독은 미시간대학 연구진이 선충에게 가한 ‘착한 스트레스’와 같은 역할이다.

즉 수명을 늘렸다. 수백 년간 사용된 왕가 비법을 최신 과학이 입증한 셈이다. 그렇다고 장수하려고 왕처럼 독풀을 우려먹을 생각은 하지 말자. 독은 먹으면 죽는다. 극소량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이지 아무런 독이나 먹으란 소리는 절대 아니다. 과학이 밝힌 호르메시스 원리를 안전하게 몸에 적용할 방법이 없을까? ‘착한’ 스트레스에는 소식 과 냉수마찰이 있다.

장수촌의 특징인 소식은 연료인 포도당이 줄어드는 일종의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는 활성산소를 발생시키고 이 신호를 받은 세포는 에너지 저장고인 지방을 태우라고 명령한다. 미시간대학 연구진은 선충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면 미토콘드리아에서 ‘활성산소(ROS·Reactive Oxygen Species)’가 발생함을 밝혔다. 활성산소는 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소량 활성산소는 위험신호를 보내 온몸을 준비시킨다. 예전 광부들은 새(카나리아)를 들고 광산에 들어갔다. 내부공기가 위험하면 새가 먼저 반응해서 광부들이 대비하게 한다. 세포에서 카나리아는 세포보일러(미토콘드리아)다.

소량 활성산소 위험신호가 온몸 준비시켜

냉수마찰도 착한 스트레스다. 몸을 준비케 한다. 즉 ‘갈색지방’을 늘린다. 갈색지방은 유아에게만 있다고 알려진 세포 내 비상보일러다. 체온이 떨어지면 성인은 몸을 떨거나 옷을 입어서 온도를 높인다. 이런 기능이 약한 유아들은 체온이 떨어지면 갈색지방을 태워 체온을 높인다. 갈색지방에는 많은 보일러(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런 갈색지방이 성인에게도 남아 있다. 찬 곳에 있으면 세포는 온도 스트레스를 받고 두뇌에서는 스트레스 신호물질(카테콜아민)이 나온다. 이놈은 보일러(미토콘드리아) 활동도를 높이고 보일러 수를 늘려서 갈색지방이 되게 한다. 체온을 유지하려는 스트레스 반응이 에너지대사를 돕는다는 의미다. 즉 소식이나 냉수마찰은 모두 ‘착한’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온몸을 최적상태로 준비시킨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있다. 운동이다.

운동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을 높인다. 원리는 이렇다. 숨이 턱에 차는 유산소운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분비시킨다. 운동을 자주 하면 인체는 적응해서 호르몬이 적게 분비되고 더 빨리 분해된다. 스트레스 저항성이 생긴 거다. 이번 연구는 두뇌가 관여하는 호르몬뿐만 아니라 세포 미토콘드리아도 활성산소로 세포 자체를 준비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착한’ 스트레스처럼 운동이 DNA에 꼬리표를 붙인다. 즉 운동 효과가 오래간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는 운동이라도 지나치면 독이다. 개인맞춤형 운동량이 필요하다.

유산소운동 주 2.5시간, 근육운동 2회는 해야

미국심장학회는 중·고강도 유산소운동(주당 2.5시간)과 근육운동(주 2회)을 권한다. 유산소운동 강도는 심박수로 알 수 있다. 기상 후 심박수(안정심박수)가 71인 52세 성인이라면 중강도 운동 심박수는 0.5*(220-52)+71=155(빠른 걷기, 땀이 촉촉한 정도)다. 주당 2.5시간 운동하자. 적응되면 고강도(0.5 대신 0.85로 계산하면 심박수는 214)까지 올리자. 이 운동량은 건강한 성인기준이다. 지병이 있으면 의사 상의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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