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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은 인생에도 희망은 있었다”

배은나 기자
배은나 기자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20/01/28  0면 기사입력 2020/01/27 15:05

세계밀알연합 이재서 총재 인터뷰

이재서 총재(오른쪽 세 번째)와 애틀랜타 밀알선교단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이재서 총재(오른쪽 세 번째)와 애틀랜타 밀알선교단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입학 거부 당했던 시각장애인에서
한국 첫 시각장애인 대학 총장에…
총신대 재학 3학년에 밀알 창립
애틀랜타지부 20주년 맞아 방문


“사람 몸의 99%를 차지하는 눈을 잃고는 1%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좌절했죠. 그러나 1%의 인생에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세계밀알연합 총재인 이재서 한국 총신대 총장이 지난 24일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애틀랜타 밀알선교단의 창립 20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다. 노크로스 밀알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그가 걸어온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인생은 한 마디로 도전의 연속이자 ‘끈기의 승리’였다.

이 총장은 15살에 실명했다. 3살이 되기 전 심하게 앓았던 열병이 시신경에 영향을 줬다는 의사 말에 가족 모두 절망에 빠졌다. 도저히 현실을 인정할 수 없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공부’와 ‘기독교’였다. 그는 “서울맹학교에 있을 때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차츰 적응해 나갔지만 실명했다는 현실이 바뀐 건 아니라 여전히 힘들었다”면서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전도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는데 그날 내 사고방식, 본질적인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새롭게 살아갈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날 설교 주제는 ‘젊은이를 위하여’였다. 이 총장은 “그 전까지 눈은 사람 몸의 99%의 기능을 한다는 말을 진리로 알고 나 자신은 아흔아홉을 잃은 ‘1% 인생’이라며 스스로 기죽고 살았다”면서 “하지만 그날 작은 개미가 큰 동상 위를 열심히 기어 다녀도 동상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에, (내가 가진 1로) 100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남아 있는 1%를 찾고 그 1% 속에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인생은 다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했다.

이 총장은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전남 순천으로 내려가 순천성경학교 2학년에 입학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점자로 받아 적어 다시 손으로 읽으며 공부했다. 졸업 후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설립한 총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물론 입학 과정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이 총장은 “학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원서 접수를 거부했다”면서 “공부를 못 따라갈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원서를 받아줬다”고 말했다. 이어 “학업을 따라가야 할 일도 걱정이었고, 경제적인 부분도 문제였지만 그런 중에도 공부는 재미있었다”면서 “혹 장애인이니 못하겠지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장애인에게 누가되는 일이기에 더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총신대 3학년 재학 중에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했다. 그는 “남을 돕는다는 것, 특히 장애인을 위해 사역한다는 것은 나를 녹이고 희생해야만 열매 맺을 수 있는 귀한 일이다”라며 “당시 총신대 학생들과 교회 청년들이 모여 만든 ‘밀알선교단’이 맹인촌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이것이 장애인 선교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한복음 12장 24절을 인용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희생과 죽음을 통한 새 생명의 탄생, 이것이 장애인 선교 단체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총장은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만든 후 선교 활동을 해외로 확장하고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필라델피아 성서대에 편입한 뒤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그리고 1996년 총신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 사이 한국밀알선교단은 장애인에게 기독교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국제 공동체 ‘사단법인 세계밀알연합’으로 성장했다. 현재 22개국에 약 70개 지부가 활동 중이다.

이 총장은 지난해 2월 정년퇴직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은 총장에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총신대는 갈등과 분규가 심했고, 또 총장 선출 과정이 복잡했지만 그는 그해 5월 열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총장이 됐다. 이 총장은 “한국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여전히 높다”면서 “그런 와중에 내가 총장이 된 건 한국의 달라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은 충격(그가 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총장은 앞으로도 학문의 장인 대학에서, 봉사의 현장인 밀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며 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1000곳의 밀알 지부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라며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장애인들이 밀알 사역을 통해 희망을 얻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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