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고통의 시간 속에서 생각난 건 교회밖에 없었다"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 신앙 인터뷰

한국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황상혁 씨는 원인 모를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재활에 매진하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황상혁 씨는 원인 모를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재활에 매진하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 과정을 수료했다.

할리우드 길거리를 방문한 황상혁씨.

할리우드 길거리를 방문한 황상혁씨.

탈북때 브로커 목사에게 실망해
"처음엔 기독교인과 어울리기 싫어"
한국서 따뜻하게 맞아준 교인들
교통 사고때 "벌 받았다" 생각
힘들지만 성경 구절 의지해 극복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주 때 감동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46)씨가 LA를 방문했다.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중 하나인 애너하임 '국제악기박람회(NAMM)'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그는 한인 교회를 돌며 피아노 연주와 간증의 시간을 가졌다. <본지 1월23일자 a-3면> 그는 한인 교회에서 직접 편곡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현재 황씨는 한국의 한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 등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교회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탈북·망명 과정에서 상처가 많았는데.

(그는 탈북 과정에서 한국만 안 가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 다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황씨는 "미국행을 추진하겠다는 브로커에 속았다. 당시 그 사람은 자신을 '목사'로 소개했었다"고 털어놨다.)



"목사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때 얼마나 실망이 됐고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국에 왔을때 '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만난 남한 사람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처음엔 그들과 어울리기 싫었다. 기독교에 대해 상처가 많았으니까…"

(황씨는 인터뷰 중간에 탈북 경로나 북한에서의 이력 등 본인의 이야기가 "한국 언론을 통해 와전된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와전된 부분에 대해 언론사에 여러번 정정보도를 요청했지만 고쳐지지 않아 그것 역시 상처였다고 했다.)

-어떻게 마음을 열었나.

(황씨는 한국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원인 모를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뒤 12일이 지나서야 의식이 회복됐을 만큼 중상이었다.)

"교통사고로 머리 수술을 받았다. 사고 현장에 CCTV가 없어 아직도 사고 원인이나 용의자 조차 모른다. 처음엔 손가락도 안 움직였다. 평생 피아노를 쳐 온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때 떠오르는건 '교회'밖에 없었다."

-신이 믿어지나.

"사고가 났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렸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나에게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 의미를 전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씩 느끼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쓰려고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보면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려는 것 같다."

-회복은 다 됐나.

"주변의 도움으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평양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봐 악몽에 시달린다. 사고가 났을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 망가졌었다. 계속 움츠러들고 나 자신을 스스로 가뒀다. 물론 지금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만 붙들어야 함을 깨닫고 있다."

(그는 재활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 과정을 수료했다. 학비도 현재 출석중인 교회에서 지원해줬다.)

-종교라는 게 어색하지 않나.

"교회에 가서 보니까 북한의 '정치 조직 생활'과 비슷한 게 참 많았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교회에서는 '하나님'…말만 바꾸면 거의 흡사했다. 그래서 처음엔 교회의 모습을 보고 거부 반응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토요일마다 오후 2시에 정치 조직 생활에 참여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까지 와서 '또 같은 생활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서울대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나니 자립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교회에서 한 장로가 '일단 한국에 왔으니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음악가로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가.

"내가 '살겠다'며 자꾸 모습을 드러내면 아무래도 평양에 두고 온 가족을 옥죄일 수 있고, 내가 피아노라도 안치면 한국서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지고…그 모순에 괴롭다."

-미국에 오고 싶다 했는데.

"미국이 말도 안 통하고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울지라도 마음만은 편안할 것 같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한국에서 자꾸 노출되기 시작하면 북한의 가족이 힘들어질까봐 그게 걱정된다. 가족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

"성경말씀을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내용의 로마서 8장28절의 구절이다. 아직 성경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 구절을 떠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한다."

-한인 교회에선 어떤 곡을 연주했나.

"9곡의 찬송가를 준비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등의 곡을 직접 편곡해서 연주했다. 개인적으로는 준비한 곡중에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제일 감동이 된다."

-그 곡이 특별한 이유는.

"한국에 왔을 때 처음으로 쳐봤던 곡이다. 전세계가 다 아는 곡을 피아노로 치니까 긍지도 느끼고, 너무 좋아서 직접 편곡을 다했다. 그래서 애착이 간다. 또,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한국 음악의 음조 체계와 비슷해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한국 노래들은 5음계가 많은데 어메이징 그레이스도 5음계다. 물론 아리랑도 5음계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