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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년기획③] 美가 이겨보이지만 日도 챙겼다, 파병서 빛난 아베 ‘쿠션외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28 12:02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에 지금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20년 미국의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중국, 일본, 유럽의 대응 방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전화 통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75분이나 통화를 했다는데, 그건 연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시간 아니냐."

지난달 21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화 회담 소식을 접한 민영방송 TBS의 시사프로그램 사회자가 한 말이다. 역대 최고의 궁합이라는 두 정상의 33번째 전화통화였다.

이란 대통령으로는 19년 만에 일본을 찾은 로하니 대통령이 아베와 회담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북한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고 하지만, 트럼프의 진짜 관심사는 이란과 로하니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아베로선 머릿속을 괴롭혀온 숙제, 자위대의 중동파견 문제가 마무리된 날이기도 했다. 7월 초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를 위해 호위 연합체 구성을 요청한 이후 5개월 만이었다.

전날 로하니는 "항행의 안전보장에 공헌하겠다는 일본의 의도를 알겠다"며 자위대의 중동 파견에 이해를 표시했다. 아베는 다음날 ‘이란의 적’인 미국의 트럼프와 통화했다. 양쪽에서 오케이를 받은 아베 총리는 엿새 뒤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서 자위대 파병안을 결정했다.

'미국 주도의 연합체 참여가 아닌 독자 파견, 미국과 정보는 교환, 무기 사용 없는 조사·연구 명목, 화약고인 호르무즈 해협은 활동범위에서 제외' 등이 골자였다. 트럼프와 전통적 우호국 이란의 체면을 모두 배려한 고뇌의 결과물이었다.

막판까지 허둥댄 한국과 달리 일본의 파견안은 지난여름 일찌감치 결정됐다. 지난해 10월 중순 국가안전보장회의까지 열어 세부 방향을 확정했다. 국제 정세를 지켜보고 이란의 동의를 얻느라 뜸을 들였을 뿐이다.




지난해 9월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지난해 8월과 9월 잇따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일본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정상 간 대화에서 트럼프의 기대 수준을 미리 완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동맹 경시, 질서 파괴'로 요약되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노선에 일본이 느끼는 당혹감은 엄청나다. "미·일 동맹은 영원하리라 생각했지만, 트럼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이오키베 마코토 전 방위대학장)는 위기감이 크다. 지난 19일 미·일 안보 조약 서명 60주년을 맞아 아베 총리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손자까지 초청해 호들갑을 떤 것도 '위기감의 발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일본은 그동안 트럼프의 '공세'에 비교적 민첩하게 대응해왔다. 정상 간 사전소통→미국의 기대수준 완화→일본이 수용 가능한 해법 제시→미국 측 요구의 70~80% 선에서의 타결로 이어지는 아베식의 '쿠션 외교'가 작동했다.


협상 개시 1년 만에 타결돼 1월 발효된 미·일 무역협정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는 4월(워싱턴), 5월(도쿄), 6월(오사카), 8월(프랑스 비아리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소위 '네마와시(根回し·나무를 옮겨심기 전 일련의 준비작업)'로 불리는 사전 조정 작업을 했다. 5월 일본 국빈방문 때 골프와 로바다야키, 스모 관람 접대를 받은 트럼프가 "협상을 일본의 7월 참의원 선거 뒤까지 기다리겠다"며 아베를 배려한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26일 일본에서 스모를 관전하는 동안 관객들이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찍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9월 도출된 합의는 ‘미국 농산물과 일본 자동차의 관세를 일본 주도로 발효된 TPP(환태평양무역동반자협정)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일본도 자동차에 대한 추가 관세를 피하는 등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불확실성을 줄였다"는 재계의 환영 무드 속에 협정은 지난해 말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베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양국 관계엔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현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내년 3월까지 유효한 현 협정을 대체할 새 협상이 올여름 이후 시작된다. 기지 내 일본인 직원의 기본급과 난방·수도요금 등에 대한 일본 측 부담금, 소위 ‘오모이야리(배려) 예산’(2019년 기준 약 2조1000억원)의 인상 폭이 초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지난해 5월 28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승선했다. [AFP=연합뉴스]






요미우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방일했던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엔 기존의 5배를 요구했다"고 소개하자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당시 방위상이 "미 병사의 인건비까지 내라고 하면 그건 (동맹이 아니라) 용병 아니냐. 미군의 자존심이 깎이는 것 아니냐"고 받아치는 장면도 있었다. 고노 다로(河野太?)현 방위상도 최근 "미·일 동맹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며 견제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 역시 '쿠션을 통한 해결'을 구상 중이다. 아베는 14차례 열린 정상회담 때마다 트럼프에게 "미국 샌디에이고에 기지를 두는 것보다 일본에 두는 게 싸지 않느냐"며 일본의 안보 공헌을 강조했다. 이밖에 F35 전투기와 지상배치형 요격미사일 '이지스 어쇼어' 등 미국산 무기 구입, 무인도 매수를 통한 미군 함재기 훈련 장소 제공 등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낮춰보겠다는 복안이지만, 이 정도로 트럼프가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서는 일본의 전략과 전술은 아베 총리가 직접 지휘한다. 인도·호주·동남아 등 '준동맹'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병행하는 것 등의 큰 그림은 모두 아베가 그린다. 또 지난 7월 미국의 중동 파병 요청 뒤 외무성 중동아프리카국장이 총리 집무실에 불려간 날이 27일이나 될 정도로 정부 내 세밀한 논의도 아베가 주관한다.

국익 앞에서 여야 간 대립이 격하지 않은 건 일본의 강점이다. 아베 내각 지지율을 10% 포인트 이상 떨어뜨린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 속에서도 일본 국회는 지난해 말 미·일 무역협상을 큰 충돌 없이 비준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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