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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제도의 양면 (1) 소환 현장 르포: 가자니 '걱정' 무시하자니 '찜찜'

[LA중앙일보] 발행 2020/01/29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20/01/28 22:46

시민 의무 다해야 하지만
예정된 일·스케줄 뒤엉켜
노란 편지 받는 순간 한숨

시민권자의 배심원 의무 및 소환 규정이 강화됐다.

영어 미숙 등으로 인한 제외 요청이 점점 까다로워진다. 소환 편지를 무시했을 경우 곧바로 벌금 통지서가 발송된다.

심지어 전과자에 대한 배심원 의무까지 법제화됐다. 가주에서는 올해 1월부터 중범죄(felony) 전과자(성범죄자·보호관찰자·가석방자는 제외)도 배심원으로 선정할 수 있는 법(SB310)을 시행중이다. 그동안 가주에서 전과자는 배심원에 선정될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참여 및 소환율을 높이기 위한 법원의 방책이다.

최근 본지 기자가 겪은 일을 르포 형식으로 전한다.


새해 벽두 배심원 소환 편지를 받았다. 벌써 스트레스다. 노란 색깔의 편지를 폈더니 1월 넷째 주(21~24일)가 호출 대기 기간이다. 그 기간에는 언제 법원에 불려갈지 모르기 때문에 상시 대기해야 한다.

전날 오후 7시에 매번 웹사이트 또는 법원에 전화를 걸어 소환일을 확인해봐야 한다. 개인 일정부터 확인했다. 법원 호출에 대비, 일 관련된 스케줄도 전부 조정해야 한다. 문득 “배심원 일정을 몇 번 연기 했더니 매달 소환 편지가 날라오더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시민권자에게 배심원은 의무다. 일정 연기를 요청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법원의 독촉은 계속될 게 분명하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편지를 받자마자 법원 웹사이트에서 기본 정보를 등록하고 해당 기간에 응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환 기간이다. 무사히 넘어가나 했는데 결국 23일 다우니 법원에 소환 일정이 잡혔다. 가주 노동법(230조)에 따르면 고용주는 직원의 배심원 출두를 막을 수 없다. 이를 차별하거나 해고 사유로 삼을 수도 없다. 단, 배심원에 소환된 직원에게 임금 지급 여부는 고용주의 재량이다.

일단 랩톱 컴퓨터를 들고 법원으로 향했다. 배심원 대기실에서까지 일을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대기실에는 50여 명이 몰려 있었다.

한 히스패닉 남성이 법원 서기에게 사정을 한다. 언뜻 들어보니 “배심원에 선정되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 면제해달라”는 주장이다. 법원 서기는 “배심원 수당을 준다, 하루에 15달러다. 나중에 판사에게 이야기해보라”며 말을 끊었다.

호출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을 하는데 결국 내 이름이 불렸다. 법원은 일단 예비 명단에 30여 명 정도를 차출하고 그 중 12명을 배심원으로 선정한다. “점심 후 오후 1시30분 까지 법정으로 오세요.”

자영업자라고 밝힌 한 중년의 남성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는 “몇 년 전에도 배심원단에 포함된 적이 있는데 무려 일주일 간 법원을 오갔다”며 “배심원 때문에 비즈니스도 지장을 받는다, 빠질 방법은 없으니 제발 차출이 안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푸념이다.

법정에 들어가 우선 순번대로 12명이 배심원석에 올랐다. 판사가 개인에 대한 신상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거주지, 누구와 사는지, 체포된 적이 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법집행기관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등 상세하게 질문을 던진다.

벌써 오후 3시50분. 이렇게 느릿느릿해서 언제 뽑나 하던 찰나였다. “내일 1시30분에 다시 오세요.”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내일 다시 오라니 무슨 말인가. 법정 관계자에게 재차 확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한 여성은 “나는 너무 해보고 싶다. 재판에 직접 참여한다는건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며 웃는다.

순간 감정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그래, 시민으로서 권리만 누리려 하지 말고, 의무도 다하자.”

다음날 다시 같은 장소. 이번에는 원고(검사) 측과 피고 측 변호인이 배심원 후보 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해당 소송에 대한 편견 또는 선입견 등이 있는지 알아보는 절차다.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배심원을 추리는 셈이다.

그때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저는 미국에 온 지 10년이 채 안됐습니다. 영어가 불편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있다”며 이 여성을 격려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6명이 걸러졌다. 그러면 다시 예비 명단에서 6명이 차출된다. 결국, 나도 호명이 됐다.

또 다시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선정 절차를 거치는데 또 끝나버렸다. 월요일 오후 1시30분에 다시 오란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도저히 안 된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법원은 아무런 항변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맡은 일이 마음에 걸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어쩔 수 없다. 어디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안 가면 무조건 벌금이다.

27일 다시 법정에 출두했다. 판사 성향을 보니 배심원 제외를 위한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는 듯했다. 변호사가 해당 사건을 두고 이것저것 던지는 질문에 차근차근 견해를 밝혔다. 견해를 들은 변호인단은 결국 나를 배심원단에서 제외했다. (아마 피고측에 불리한 견해를 가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만약 배심원단에 포함됐다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법원을 오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배지를 반납하니 초록색의 참여 인증서를 주었다. 이 인증서만 있으면 최소 1년은 배심원 소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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