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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핵가족 시대 효의 가치

설 명절 내내 ‘효’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차례를 지낼 때와 성묘를 다닐 때는 물론, 친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무시로 떠올랐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걸음에서도 효도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띄었다. 효가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 깊게 흐르고 있고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숨쉬고 있다는 증표이리라. 효는 부모에의 사랑이고, 존경과 감사, 그리고 공경이다. 효는 그러나 폭이 넓어서 부부애와 형제자매의 우의에도 연결돼 있고, 친족관계와 향수도 부모에의 정과 떼어놓을 수 없다. 효심을 깊이 품어보지 않은 메마른 성정의 인품에게서 뜨거운 부부애나 따듯한 우정, 애국충정을 기대하는 일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꼴은 아닐는지?

경기도 수원을 거쳐 효행로를 따라가 화성의 융건릉까지를 다녀보면 곳곳에서 정조의 애틋한 효심이 절절히 느껴진다.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부친 사도세자와 모친 혜경궁을 융건릉에 안치시킨 일과 배다리를 이용한 성대한 참배 행사, 수원행궁에서의 혜경궁을 위한 환갑잔치, 융건릉에 가까운 수원성 축성 등은 정조의 각별한 효심에서 우러나온 결정체이다. 11살 때 부친 사도세자가 조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한 현장을 목격한 어린 아들의 충격이 지극한 효심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희생을 부른 당쟁(당쟁 외에도 포악한 성격도 원인이라는 기록도 있음)을 막기 위해 탕평책을 썼고, 규장각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으며, 수원성을 축조하고 장용영을 설치해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유년기에 부친을 여읜 필자에게 모친은 특별한 분일 수밖에 없었고, 모자의 정은 서로 더없이 간절했다. 어머니에 대해 가장 애틋한 기억은 모친이 중병으로 시달리실 때 모시고 병원을 다닌 일이다. 직장의 일로 바빠도 매번 새벽에 일어나 멀리 병원에 모시고 가서 길게 늘어선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눈 모자 간의 대화는 따듯하고 정겨웠다. 중환이라는 진료를 받았을 때의 낭패감과 호전되었다는 결과를 받는 기쁨은 지금도 눈물겨운 순간들로 생생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써 당혹감을 감추려 했고, 감격은 아들에게로 미루었다. 그럴 때 자식은 내색 않고 속으로 마냥 울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누구나 이러한 체험을 한 두 가지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핵가족 사회가 발전하자 부모에 대한 생각은 훨씬 덜해지고, 농도도 엷어졌다. 부모자식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형식화되고 있다. 자식들은 자연히 자기들 부부와 자식들에게 더 치중한다. 그러나 자식을 낳고, 키우는 과정과 그런 과정에서 쌓이는 정은 시대가 변해도 어쩌지 못하는 숙명 같은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치더라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고, 거기서 이뤄지는 관계와 정서는 자연스러운 업보이다. 어느 누가 ‘효’의 숭고함과 그 진한 감정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송장길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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