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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마음 속 ‘인종주의’ 바이러스

중국 우한 인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내 주변 누군가의 옷솔기에 붙어 있고, 그것이 내 가족과 이웃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보다 더한 공포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처음으로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여서 공포를 더욱 가중시킨다.

우리는 느닷없이 이미 낯익은 마음의 바이러스들에 감염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아마 가장 심각한 것은 인종주의라는 마음의 바이러스일 것이다. 예컨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금지 요청”이라는 청원이 1월 23일 처음 게시된 이래 60만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서명했다. 또다른 청원은 우리 국민들도 중국으로 출항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상대국이 어디건 외교, 통상과 국제법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어느날 갑자기 양국간 출입을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개명한 현대국가는 없다. 마침 북한은 중국과의 출입국을 전면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발맞추어 언론도 중국과 중국인들과 그들의 식문화, 아니 문화 전반을 신종 바이러스와 관련지어 보도하기 바빴다. 우한의 전통시장통과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위생상태’에 대한 르포를 써내는가 하면, 어느 중국인이 박쥐를 먹는 영상이 공중파를 타고 안방에 버젓이 비춰지는 일도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혀 무관한,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가 보도의 주제였던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들은 과거의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인종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상징적이고 잠재적 인종주의로 진화하고 있는 장면들을 포착한다. 나와 다르게 생겨서 싫은 것이 아니라 혐오의 이유를 찾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류층은 그래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와 다르게 생겨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노력하지 않고 특혜를 받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기회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라고. 똑같은 논리로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외국인이어서 싫은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중국인이어서 싫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저분하게 살고 병균을 옮겨오기 때문에 싫은 것이라고. 어쩌면 더 심각한 병균과 바이러스는 우리 마음속의 인종주의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인종주의는 규범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다르게 생긴 타인과 타인의 생소한 삶의 양식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어릴적 교과서에서 ‘순수하고 고결한 백의민족’의 서사를 읽는 순간 이미 마음속 경계선이 짙게 그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종주의로 폭발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킬 따름이다.

인종주의 바이러스의 또다른 변종은 배타주의이기도 하다. 나와 타인들을 경계짓는 구분도 사실은 생각만큼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을 바라보는 일부 시각을 통해 이번에 매우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전세기에 탄 이들이 내릴 곳을 찾지 못하는 이 공동체는 누구의 공동체인가. 이들은 우리의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만 남은 곳에 공동체가 들어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곳에서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정당과 후보들이 있음은 선거공학이 증명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다가올 총선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예비후보들의 정치적 미래는 사실 지금 당장 예측하기 힘들지만, 선거가 혐오와 배제로 잠식된 곳에서 건강한 정책적 논의가 사라질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지나간 곳에 공동체는 파괴되고 남은 것은 먼지같은 개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박원호 /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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