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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나에게 보내는 선물

2월이 되면 상점마다 밸런타인스데이 장식으로 꽃 잔치를 한다. 일하러 가는 길에 꽃집을 지나친다. 창문에 비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지.

10여 년 전 꽃집에서 경험자를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봤다. 다음 날 아침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다. 당시 집에서 멀지 않은 허모사비치 근처에 있는 꽃가게였다. 들어서니 주인인 듯한 남자분이 있었다. 광고를 보고 왔다는 말에 반색하며 맞아준다. 주인은 제법 큰 화병을 주며 꽃 장식을 해 보란다. 대답은 유쾌하게 했지만 온몸이 경직되었다.

양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머릿속에 먼저 그림을 그리며 여러 종류의 꽃을 골랐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이어갔다.

손재주가 있군요! 단 한마디로 그 꽃집에 파트타임으로 취직이 됐다. 꽃꽂이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소문난 꽃집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곁눈질해 익힌 화환을 만들어 보았다. 나름대로 디자인해서 꾸며 보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손끝이 야무지다는 이유로 부케와 코르사주 만드는 일은 어느새 내 차지가 되었다. 특히 밸런타인스데이에 들어오는 장미꽃 주문은 내 담당이다.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시를 떼어내고 잎사귀를 추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꽃 목대가 부러지지 않도록 철심을 넣는 일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화병에 꽂는 장미꽃은 무엇보다 간격을 잘 맞춰야 우아하게 보인다. 작업하다 보면 언제나 손톱은 푸르죽죽 때가 끼어 있고, 반창고는 손가락 마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수고가 없이는 아름다운 화환이 탄생할 수 없다.

장미는 꽃 중의 꽃이라고 한다. 더없이 예뻐서 사랑을 받는가 보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진다. 누군가를 위해 꽃을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하다. 꽃마다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더군다나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매혹적인 향기가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나를 위해서 돈을 주고 꽃을 사 본 적이 없다. 특별한 날에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꽃 대신에 현금으로 달라고 은근히 어필했다. 꽃은 한 주간이 지나면 시들고 볼품이 없으니 낭비라고 주장하면서.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꽃 선물을 받고 싶어졌다. 중년을 넘긴 나이 탓인가. 아니면 자식들이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안정되게 사는 모습에 마음이 느긋하게 풀어진 이유에서일까.

가족들에게 받고 싶다. 아니다. 내가 나에게 선물하련다. 이제껏 잘 견디며 살아줘서 고마웠다고. 내일 꽃 도매상에 가서 좋아하는 노란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겠다.

노란 장미꽃에 둘러싸여 꽃향기에 한껏 취하련다. 살다가 이런 사치를 한 번쯤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 나에게 사랑을 보낸다, 이 사랑의 달에.


정조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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