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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민간 버스의 추억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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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2/07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2/06 18:45

눈길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강원도 화천 저수지가 선하니 떠오른다. 군대 생활을 했던 곳이다. 매서운 강원도의 추위는 호수의 강줄기를 빈틈없이 얼려 붙이고 그 위를 흰 눈으로 위장한다.

오음리에서 평산리까지는 일방통행로여서 군 초소 헌병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저수지를 끼고 굽이굽이 도는 한 시간 거리이나 저쪽에서 먼저 오는 차량을 기다리게 되면 두 시간을 추위에 떨어야 한다.

부대에 도착해도 전우들은 모두 잠들어 얼굴 보기가 힘들다. 취사병은 부뚜막에 등을 지지며 코를 곤다. 그래도 쌀 한 줌을 따로 내놓아 주어 고맙기만 하다.

등불 없는 창고에서 비누처럼 꽁꽁 얼어붙은 두부를 잡고 씨름을 하다가 살얼음이 버석거리는 김치를 꺼내 한 끼니를 때우곤 한다.

사단에 보낼 현황 보고서는 내일 아침에 연락병에게 주어야 한다. 잉크가 얼어붙어 병을 왼손 주먹에 쥐고 있어야 한다. 펜촉에 묻은 잉크가 채 한 자도 쓰기 전에 얼어버린다. 펜촉을 난로 위에서 녹인 다음 재빨리 한 자를 마저 써야 한다.

일방 통행로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느림보 버스가 다가온다. 창문에 김이 서리어 안이 잘 보이지 않으나 울긋불긋 흘러나오는 불빛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곧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리라. 차가운 바깥 날씨에도 버스 안의 온기는 차창 너머로 따뜻하게 전해진다.

제대하면 저 민간버스를 꼭 타보리라는 다짐했었다. 하지만 60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한 18개월의 전방 군생활이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묻은 사연’을 들추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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