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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삶에 꾀가 나는 날

한국의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있었다. 저녁마다 개인기도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제아무리 사택과 붙어 있는 예배당이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설 때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가지런해야 함은 물론이다. 저녁마다 정숙히 차려 입고 기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늘 기쁠 수만은 없었다.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린 날엔 더 그랬다.

하루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 비를 뚫고 서울에 다녀오니 저녁 기도회 시간이었다. 그냥 누우면 딱 좋으련만 기도회가 마음에 걸렸다.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 ‘꾀가 난다’는 말이다. 기도에 꾀가 났다. 그렇다고 다른 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만 모른 체하고 슬쩍 건너뛴다손 쳐도 누구 한 사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저녁 기도회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각났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핑계였다. '비도 내리고, 몸도 피곤하고, 내일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일찍 자야지’ 이런 생각과 함께 눈 딱 감고 자리에 누웠는데 눈이 감기지 않았다. 피곤하다며 등은 바닥에 댔는데 정신은 멀쩡했다.

마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 예배당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기 싫을 때가, 기도할 수 없을 때가 절호의 기회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기도하기 싫을 때가, 기도할 수 없을 때가 절호의 기회라니?’ 스스로 물었을 때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예쁘게 봐주시려나?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실까?’ 질문과 동시에 답이 떠올랐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할 수 없을 때는 기도가 자라는 절호의 기회다."



운동도 그렇다. 근육이 지쳐서 그만하고 싶을 때, 그때 하는 운동이 진짜 운동이다. 기도만 그럴까? 운동만 그럴까? 아니다. 삶도 그렇다. 삶이 싫어질 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 살아내야 한다. 그때야말로 삶이 자라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그 목사는 비록 기도에 꾀가 났지만 이겼다. 기도하기 싫을 때, 기도할 수 없을 때 그 유혹을 이기고 기도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영적 승리의 감격에 젖어 예배당을 나서는 데 어느새 비는 그치고 맑은 하늘에는 밝은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 하늘은 보통 하늘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사람들과 말하기조차 힘들 때도 있다. 삶에 꾀가 날 때다. 바로 그때가 삶이 자라는 절호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뎌 보자. 우리 인생에도 밝은 별빛이 찬란히 빛날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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