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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참을 수 없는 격리의 고통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7년 초, 31살의 남성 A는 넘어지며 부딪혀 생긴 가슴 통증이 가시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던 그는 2001년에 페루를 방문했을 만큼 여행을 좋아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촬영한 흉부 X선 사진에서는 걱정했던 늑골 골절 대신 전형적인 폐결핵 소견이 발견됐다. 결국 A는 배양 검사를 통해 폐결핵에 걸린 것으로 진단됐고 4월 23일부터 결핵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가 5월 중순에 약혼녀와 함께 그리스로 날아가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유럽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주일 정도만 약을 먹으면 대개 전염력은 없어진다는 설명을 들은 A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마음먹는다.

5월 1일, A에게서 분리된 균이 여러 결핵약에 내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는데, 이는 지금까지 먹어왔던 결핵약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이었다. 5월 10일, A가 살던 지역 보건국의 에릭 베닝 박사를 포함한 의료진은 A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으니 5월 14일 출발하는 여행 계획을 취소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A는 면담 후 원래 계획보다 이틀 앞당긴 5월 12일에 파리로 출국해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의 병을 일으킨 균은 극도로 치료하기 어려운 광범위 내성 결핵균으로 보고됐고, 보건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5월 22일 오후,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의 데이비드 킴 박사는 그리스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로마 여행 중이던 A와 가까스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A에게 보건당국이 이송 대책을 세울 때까지 일단 로마에 머물러 있고, 특히 절대로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후 보건당국은 여러 방안을 검토하는데,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운영하는 비행기나 군용기를 이러 저러한 이유로 사용하기 어려워 난항에 부딪혔다. 결국 데이비드 킴 박사는 A에게 직접 비행기를 대여하여 귀국하거나 로마에서 당분간 머물며 치료받을 것을 추천했는데, A는 직접 부담해야 할 비행기 대여 비용이 14만 달러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한다.

다음 날, 미국 측의 요청을 받은 이탈리아 보건부의 낸시 빈킨 박사가 이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을 방문했지만, A 부부는 이미 호텔을 떠난 뒤였다. 보건당국은 초조하게 부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데, 얼마 후 이들은 차를 운전하여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태연히 입국한다. 이탈리아에서 격리 수용될까 걱정되어 프라하를 경유하여 몬트리올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것이다. 같은 비행기를 이용한 승객 중 몇 명은 A를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감염된 사람은 없었고, 즉시 격리 병상으로 옮겨진 A는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과 장기간의 투약 끝에 회복됐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격리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하여 여러 나라로 번질 전염병의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감염자의 격리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혹시라도 내가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한동안 외출하지 않는 것, 증상이 생기면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임재준 /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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