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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제7사단 용사들의 한국 사랑

전쟁에는 죽은 자와 산 자만 있는 게 아니다.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땅에 살아가려는 이들의 생존기가 함께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아픔도 공포도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마저 세상을 뜨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늘어나니 전쟁의 참상은 그저 기록 속에 존재하는 평면의 사건처럼 담담해지고 있다.

휴전이 된 지 67년이 흐르는 동안 먼지가 자욱했던 시골 황톳길은 아스팔트로 바뀌었다. 도심의 거리에는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세련된 건물이 들어섰다. 잔해더미 앞에서 울부짖던 어머니들의 절규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들의 무던함이 없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그 시절을 지나는 동안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사회는 부패했고 독재 권력의 힘은 막강해서 서민은 어깨를 펼 수 없던 암울한 시절을 지나야 했다. 월동준비로 연탄 100장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으면 든든했던 시절, 퇴근하던 아버지의 손에 통닭 한 마리라도 들려있으면 온 가족이 행복했던 소박한 과거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피란민의 이야기가 꼰대의 넋두리라고 고개를 돌리겠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가난을 기억하는 미군들이 있다.

캠프 카이저는 경기도 포천군에 있던 미군 부대다. 휴전 후 철수하기까지 16년간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이 그곳에 주둔해 있었다. 나는 80명 정도 되는 제7사단 용사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부대소속이었던 짐(Jim)은 한국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고 부대위치와 현재의 모습까지 동영상으로 올려놓았다.



중국에서 신종 감염증으로 사람이 죽어나가자 러시아는 미국의 짓이라고 프레임을 만드는 모양이다. 정치적인 속내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일이다. 소련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했다는 게 훗날 밝혀지고 말았으니 스탈린은 한국전을 일으킨 장본인이나 마찬가지다. 소련제 탱크에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릴 때 미군 병사는 자신들의 돈을 털어 학교를 세워주었다.

경기도 가평고등학교는 1952년 한창 전쟁중에도 천막을 치고 150명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당시 제40보병사단 조셉 클리랜드 장군은 병사들에게 2달러씩 걷어 공병대에게 학교 건물을 짓게 했고 마을 주민들도 힘을 보태 교실 10개와 강당이 만들어진 학교다.

음모와 술수가 횡행하는 게 정치라고 하지만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트릴 만큼 미국이 반인륜적인 일을 한다면 하늘이 두고만 보고 있을 리 없다. 전쟁고아를 긍휼이 여겼던 미군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리는 것 또한 하늘은 원하지 않는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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