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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황금기의 아이콘 전설 속으로

커크 더글라스(1916~2020)
5일 향년 103세로 자택서 별세
70년간 90편 출연…통큰 자선가
장남 마이클, 맏며느리 제타 존스

지난 5일,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커크 더글러스가 유대계 미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16년 12월 뉴욕주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이수르 다니엘로비치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청년기까지 매우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9인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힘들던 시절, 더글러스는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이름을 '커크 더글러스'로 개명하고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제분소 앞에서 스낵을 팔아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다.

제대 후 라디오 방송국에서 드라마 성우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종종 연극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시 유명 배우인 리차드 위드마크가 맡아 하던 역의 대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시절 그와 교류했던 배우들 중엔 추후 험프리 보가트와 결혼한 로렌 버콜이 있었다. 더글러스의 첫번째 아내 다이애나 딜은, 버콜의 친구이며 동료 배우였다.



더글러스가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버콜 때문이었다. 천성이 수줍었던 더글러스는 연극배우로 남아 있길 고집했지만, 1946년 버콜은 더글러스를 영화 제작자에게 소개하고 바바라 스탠윅의 상대역으로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에 출연해 스크린 데뷔를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맡은 역은 성격이 강한 아내에게 휘둘려 사는 '소심한 남편' 역이었다. 그가 출연한 90편의 영화 중, '터프가이'가 아닌 역을 연기한 유일한 영화였다.

1949년 '챔피언'에 출연하면서 터프가이로서의 본격 행보가 시작된다. 더글러스는 당시 MGM으로부터 3배의 출연료를 보장받고 이미 다른 영화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복싱영화 '챔피언'을 택한 것은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신의 한수'로 평가된다. 더글러스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에 후보로 처음 이름을 올렸고 영화 또한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1960년 그는 대표작 '스파르타쿠스'를 제작한다. 1200만달러의 예산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 제작비였다. 기획 당시는 베테랑 앤서니 맨이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더글러스는 31세의 신예 스탠리 큐브릭을 전격 기용한다.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인 이 두 사람은 촬영 현장에서 자주 다투었다. 영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았던 일화가 있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연기에 대하여 감독의 지시를 받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던 배우로 유명하다.

더글러스는 당시 공산주의적 성향으로 인하여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돌턴 트럼보(로마의 휴일)를 시나리오 작가로 고용했는데, 블랙리스트 작가를 고용했던 일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회고하곤 했다.

1963년 더글러스는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판권을 사들여 본향인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 다시 오른다. 이후 10년간 영화 제작을 시도했지만 제작자를 찾지 못해 실해하는듯 했다. 1975년, 커크의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가 제작을 맡기로 하고 밀로스 포맨을 감독에, 잭 니콜슨을 주인공 '랜들' 역에 캐스팅, 그해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5개의 상을 모두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당초 커크 더글러스가 직접 랜들 역을 연기할 계획이었지만,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배역은 니콜슨에게 넘어갔다.

생전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웠던 더글러스는 평소 후배 배우들에게 "재능을 지닌 배우는 많아도 그 재능을 활용할 에너지를 지닌 배우는 많지 않다"는 조언을 하곤 했다.

모든 장면의 씬스틸러가 되어야만 만족하는 괴팍한 성격과 연기 스타일은 오늘 날 잭 니콜슨과 자주 비견된다. 자기 만족을 위한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어쩌면 그가 103세가 되기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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