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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인터뷰] 김병목 박사 '이웃 도우며 한 평생 봉사'

[샌디에이고 중앙일보] 발행 2020/02/15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20/02/14 18:46

의사ㆍ지도자로서 SD한인사회 발전 크게 기여

김병목 박사(사진)는 요즘 한국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는 일찍부터 미국에 살게 됐지만 늘 고국을 사랑하고 샌디에이고 이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내어 놓은 인물이다.

샌디에이고 한인사회 초창기인 70년대부터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덕망 높은 지도자로 존경 받는 김 박사는 1928년 2월 16일 생으로 이 달로 만 92세다. 평생을 흉곽내과 전문의로서 의술을 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남을 돕고 봉사하는데 다 쏟아 부었다.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매일 아침마다 라호야 바닷가를 산책하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와 함께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저널 등 주요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샌디에이고에서 주류사회는 물론 한인사회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엄청나다.

1972년도 샌디에이고 한인회를 창립한 주역 중의 한 명이며 1981년에는 한인회장에 선출됐고 이어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사장직을 맡아 일했다. 1988년에는 샌디에이고 올림픽 후원회장을 맡아 ‘88서울올림픽’을 홍보하는데 많은 힘을 쏟기도 했다. 또 샌디에이고 노인회, 체육회 등 여러 한인 단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그 누구 보다도 많이 감당했다.

그는 특히 주류사회와의 교량적 역활을 도맡아 로컬 정부로부터 한인사회를 위한 각종 기금 등을 받아 냈으며, 1987년 UC샌디에이고의IR/PS(국제관계 및 태평양연안국가 연구) 대학원의 한국학과 설립에도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이 대학원에서는 지금도 한국학 전공자들을 배출해 내면서 한미간의 학문적 교류와 정치, 사회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의 이런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1992년 ‘해외동포로서 본국을 위해 업적을 남긴 인물’로 선정하고 ‘대통령 훈장’을 수여 했다.

1948년 9월 군용선인 제너럴 하지 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미국 유학을 온 그는 1958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의대에서 최초로 졸업장을 쥔 동양인이 됐다. 61~62년 샌디에이고 스크립스 크리닉에서 흉곽내과 전문의 자격을 받았다. 예일대학 의대의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게일로드 호스피탈과 브릿지 포트 호스피낙의 흉곽내과 과장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71년 다시 샌디에이고로 돌아와 UC샌디에이고 의대의 임상교수를 지냈다.

부인 한화심(산부인과 전문의)씨와는 55년 뉴욕에서 결혼해 남매를 두었다.

김박사 부부는 한인 의사가 거의 없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만해도 샌디에이고 한인들의 건강 지킴이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두 사람을 통해 많은 한인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되찾을 수 있었다.

김병목 박사는 지금도 20년이 넘은 자가용을 직접 운전도 하고 거의 매일 수영도 하고 있을 정도로 건강하며 운동 감각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한인 사회의 모임이나 행사에 초청을 받으면 가능한 한 참여하고 있다. 이민사회를 사랑하는 그의 단면이다.

한인사회를 위하는 일에 앞장서고 한인사회의 권익을 위해 일해 온 그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모범적인 한인사회로 발전한 현재가 우리들만의 공이 아님을 또 한번 되새겨 봐야겠다.

‘봉사와 사랑’의 정신을 가진 김병목 박사와 같은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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