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6.0°

2020.03.29(Sun)

[J네트워크] 봉준호의 냉면론

박정호 / 한국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정호 / 한국중앙일보 논설위원 

[LA중앙일보] 발행 2020/02/15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20/02/14 20:32

시대·사회적 배경은 고기
이를 감싸는 면발은 유머
그만의 블랙코미디 빚어
“항상 외줄타기 하는 듯”

봉준호라는 이름 석 자를 영화 팬들에게 널리 알린 ‘살인의 추억’(2003).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송강호(왼쪽)·김상경 등의 좌절과 분노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중앙포토]

봉준호라는 이름 석 자를 영화 팬들에게 널리 알린 ‘살인의 추억’(2003).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송강호(왼쪽)·김상경 등의 좌절과 분노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중앙포토]

벌써 17년 전 일이다. 한겨울 추위가 매서웠던 2003년 정월 초순에 경남 사천시로 내려갔다. ‘살인의 추억’을 한창 찍고 있던 봉준호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 개’(2000)에서 쓰디쓴 맛을 본 봉 감독은 당시 절치부심의 상태였다.

이날 촬영분은 ‘살인의 추억’ 클라이맥스 대목이었다. 형사 송강호·김상경과 연쇄살인 용의자 박해일이 철로변에서 격투를 벌였다. 봉 감독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영화지만 당시로선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란 부담스러운 소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510만 관객을 기록하며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할리우드 형사영화 문법과 차별화한 내용과 화면으로 충무로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역시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송강호의 “밥은 먹고 다니냐”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는 지금도 종종 인용되는 명대사가 됐다.

봉 감독과 주고받은 얘기 중에 냉면론이 특별히 기억난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굳이 되살릴 필요가 있느냐”는 기자의 우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냉면 고기와 면발을 생각해 보세요. 고기가 80년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이라면 면발은 이를 둘러싼 일상입니다.”

그는 고기와 면발 사이의 묘한 긴장을 주목해달라고 부탁했다. “화성 살인사건이란 시대의 무거운 분위기를 모르는 젊은이들도 맛있게 면발을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했다. 아시안게임·올림픽 등 초대형 행사를 치르면서도 막상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80년대를 블랙 유머로 소화한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래된 영화를 꺼낸 것은 물론 ‘기생충’ 때문이다. 백인 일색의 할리우드를 단숨에 뒤집은 ‘기생충’과 ‘살인의 추억’은 소재만 다를 뿐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빈부격차·사회양극화라는 무거운 고기를 코믹한 면발로 감싸 안는 ‘기생충’에서 요리 실력이 한층 성장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짜파구리’도 생각난다. 짜파게티·너구리 섞은 것에 채끝살까지 얹었으니 입맛 까다로운 할리우드도 흠뻑 빠질 만하다. 덕분에 봉 감독 자신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극찬을 듣게 됐다. 웃음과 울음의 그 희비극 말이다.

봉 감독과 다시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건 6년 전 봄 무렵이다. 그때 영화 ‘시선’으로 19년 만에 충무로에 돌아온 이장호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기사가 나간 다음 이 감독이 후배 봉 감독과 함께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24년 연상의 이 감독은 “후배 감독 중 봉준호와 가장 가깝게 지낸다. 인문학 교양이 풍부해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주제로 얘기해도 막힘이 없다.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운다”며 후배를 추어올렸다.

‘살인의 추억’ 때의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 때의 봉준호 감독.

당시 봉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몸도 많이 불어 보였다. 그가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작가 심성보가 메가폰을 잡은 ‘해무’가 난항을 겪던 때였다. 술기가 오른 그가 감독이란 직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입니다. 한 발만 삐끗해도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먹는 것으로 풀곤 합니다.” 술자리를 마친 그는 인근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왔다.

‘기생충’의 할리우드 평정 이후 봉 감독에 관한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 때까지 생활고로 시달렸고, ‘괴물’(2006) 때에는 투자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기생충’의 흥행에 대한 감독 자신의 분석이 와 닿았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감독상 트로피를 들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꺼낸 것과 맥락이 통한다.

이장호 감독은 후배의 앞날을 이렇게 예상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 정신으로 작업할 수도, 미국에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게 보면 한국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의 상상력은 결국 한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외국 문화를 뼛속까지 소화하는 건 힘겨운 일이다.”

봉 감독은 “계획이 있다”고 했다. 각기 서울과 런던에서 일어난 사건을 한국어와 영어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시대·장소는 달라도 그 안에는 분명 한국적인 것이 담길 것으로 믿는다. 회칼처럼 날카롭되 그 어느 쪽도 무 자르듯 휘두르지 않는 그의 숙수(熟手) 솜씨를 기다려본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박유진 변호사

박유진 변호사

HelloKTown